생각의 편린들

대학생 '과잠', 패션인가 욕망의 발현체인가

새 날 2016. 3. 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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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사외전'에서 사기꾼 캐릭터로 분한 배우 강동원이, 자신이 명문대 출신임을 암암리에 과시하기 위해 등짝에 서울대학교 표시가 선명한 이른바 과잠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변에서는 가뜩이나 그를 서울대 출신의 아주 유능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식하고 있던 찰나, 과잠을 입고 나타남으로써 혹시나 했던 이들의 마음마저 보란 듯이 무장해제시키고, 객관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자신이 해당 학교 소속임을 각인시키게 한다. 이로써 아무도 그를 의심치 않게 됐으며, 오히려 그와 친하게 지내려는 이들의 의도적인 접근이 이뤄지며 이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과잠'이란, 등판에 대학교나 학과 이름을 새긴 야구 점퍼를 일컫는다. 이 점퍼가 대학 구내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어느 상황에서 입더라도 편하고 실용적인 패션이라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기 시작한 옷인데, 그러한 연유 때문에 몇몇 유명대학을 중심으로 단체복 형태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웬만한 대학생들이라면 모두 이 옷을 걸치게 될 만큼 이른바 대학생의 교복으로까지 급성장했다. 

 

ⓒ한국일보

 

그런데 그 과잠이 요새 요술을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과잠 때문에 울고 웃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 과잠이란 녀석은 앞서 언급한 영화속 강동원의 사례처럼 이를 걸침과 동시에 마치 눈에 콩깍지가 씌듯 왠지 사람 자체를 달리 보이게 하여 절로 다시 한 번 쳐다보게끔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갖췄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몰라도, 아니 굳이 알 필요조차 없이, 과잠 하나만으로 해당 대학의 평판 및 수준과 동일시하게 하는 마력을 뽐낸다. 이 놀라운 마법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학교와 학과 수준에 따라 우월감을 누리게 하거나 때로는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기이한 현상은 어느덧 과잠을 일종의 부적과도 같은 신적 영험이 깃든 신묘한 물건으로 둔갑시키기까지 한다. 시중에서 때아닌 중고 과잠이 유행이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연유인가 싶다. 유명 대학의 인기 학과 과잠은 새 제품보다 오히려 비싸게 팔리는 진기한 장면마저 연출될 정도다. 웃돈을 얹어주어야 할 만큼 인기 상종가다. 그렇다면 풍요로움이 지나쳐 과잉시대로 접어든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이러한 중고 의류를, 그것도 시세보다 훨씬 웃돈으로 구입하는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다름아닌 대입 수험생들이다. 선배들의 기를 받아서라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순수한(?) 열망이 이러한 웃지 못할 현상을 빚고 있는 셈이다.  

 

 

과잠은 많은 논란을 야기 중인 아이템 중 하나다. 소속감을 키우고, 학과나 학교 단위의 단합을 도모해 공동체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측면도 있으나, 이른바 서열을 조장하거나 우리 사회의 악습 중 하나인 패거리문화를 부추기게 하는 등 좋지 않은 시선이 팽배한 게 실은 보다 정확한 진단일 테다. 서로 다른 학교 사이에서의 우열 현상은 일견 이해가 되나 심지어 같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입시 성적에 따라 학과 저마다 미묘한 우월이나 열등의식을 조장시키기도 한단다. 심지어 과잠이 갑질 논란으로 불거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일부 학교에서 과잠을 맞출 때, 학과 행사 참여에 불성실한 친구들을 아예 배제시키고 있는 까닭이다. 단합과 소속감의 상징인 과잠이 오히려 단합을 해치고 친구 사이를 극과 극으로 편가르는, 끔찍한 결과를 빚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말 많고 탈 많은 이 과잠이 한층 진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끝은 과연 어디쯤이며 어떠한 모습을 띠게 될지 가늠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대학교와 학과 표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느덧 출신 고교까지 새긴 점퍼가 최근 유행이라고 한다. 대부분 특수목적고나 유명 자율형사립고 출신이 그에 해당한다. 대략 10여개의 고등학교 명단이 활용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자신들의 월등함을 드러내놓고 싶고 아울러 이를 세인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 발현에 대해, 충분치는 않더라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게다가 영화속 강동원처럼 사기 행각을 위한 거짓 몸짓이 아니라면 굳이 문제시 될 만한 사안도 아니다.

 

ⓒ서울신문

 

하지만 유독 지연 혈연 학연 따져가며 줄세우기에 혈안이 된 우리 사회이거늘, 최고 학벌, 그것도 가장 유명하다는 대학의 지성인들마저 자신들의 인맥을 굳이 이런 방식을 통해 과시해야만 할까 싶다. 서열화된 학교 구조와 입시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불공평하며 불공정한 사회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거늘, 나름 그로 인한 혜택을 듬뿍 받았으리라 짐작되는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놓인 그들이 이를 굳이 밖으로까지 드러내놓으며 자신들의 뛰어남을 뽐내야만 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오랜 경쟁 속에서 외로움에 지쳤을 법한 대학생들이 과잠이라는 매개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또한 이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개인들은 이를 통해 자기가 속한 집단에 애정을 쏟을 수 있고 결속을 다지는 등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단합을 꾀하는 용도로서도 더없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잠의 긍정적인 측면의 이면에는 출세 지향의 욕망과 과시하고 싶은 우월감 내지 감추고 싶은 열등감, 편가르기, 그리고 계급의 속성과 같은 매우 치명적인 우리 사회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듯싶다. 과잠을 어느덧 개성 분출의 순수한 ‘대학생 패션’ 수준으로 바라보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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