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불우이웃을 돕고 싶다는 착한 마음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원 재활용이라는 순기능적 측면의 알뜰한 마음에서, 유행이 지나 못입게 된 옷이나 몸에 맞지 않게 되어 안 입는 옷들을 동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의류수거함에 넣곤 한다. 나 또한 비슷한 이유 때문에 수차례 이를 이용한 적이 있다. 애초 의류수거함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러한 취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의 얕은 시민의식은 의류수거함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툭하면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을 그곳에 몰래 버리도록 해왔다. 도심의 쓰레기통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가 얌체 시민들의 쓰레기 무단 투기 때문이었다는 씁쓸한 사연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물론 반드시 작정한 게 아니더라도 길을 가다 무심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그러다 보니 의류수거함 주변은 어느덧 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변모하기 일쑤이고, 이로 인한 민원 발생과 심지어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아일보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의류수거함을 통해 모아진 헌 옷가지들이 좋은 곳에 쓰일 것이라는 시민들의 막연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행위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탓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부 의류수거함은 이른바 업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란다. 뜨악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고물상을 운영하는 개인이 장애인단체와 의류수거함 위탁계약을 맺고 의류수거함 제작과 운영을, 그리고 장애인단체는 명의를 빌려주어 이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양쪽이 반반씩 나누어 갖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단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다른 업자가 설치한 의류수거함까지 인수하여 함께 운영하며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단다. 의류수거함마저 이른바 문어발식 운영으로 특정 개인이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의류는 재활용품 중 가장 고가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을 잘 아는 이들에겐 일종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 폐지나 고철에 비해 많게는 3배 가량 비싸게 받을 수 있는 탓이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웬만한 직장인 월급을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쯤되면 자원을 재활용하고 불우이웃을 돕고자 설치된 의류수거함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질 지경이 아닌가. 의류수거함에 옷을 넣을 경우 불우이웃에게 전달되리라는 일반 시민들의 선한 기대는 일부의 욕심 앞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일부 시민들의 얌체 같은 행위로 인해 시민 모두가 피해를 입는 사례는 또 있다. 16일 한강 다리에 불법 현수막을 걸지 못하도록 새 모양 조형물을 부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설공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은 20개 교량 난간에 새 모양의 조형물을 붙여 불법 현수막 부착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마포대교를 필두로 연말까지 일반 교량에 이를 모두 설치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8천494건의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였는데, 수거반의 활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철거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설치하고 있어 이의 운영에 애를 먹고 있단다. 그러나 새를 형상화하는 등 해당 조형물에 나름의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하지 않음만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지극히 일부 얌체족들에 국한된 사안일지는 모르나 어쨌든 불법 현수막을 자꾸만 내거는 이들 또한 우리 시민일 터이기에 이 또한 기본적인 시민의식과 관련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현수막을 내거는 이유는, 그것도 철거반이 모두 수거해 가고 과태료까지 물리더라도 또 다시 같은 자리에 현수막을 내거는 건, 이를 통해 상업적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수막 제작 비용과 단속에 걸린 대가로 치르는 과태료 비용보다 불법 현수막 그 자체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욱 크기에 숨바꼭질과도 같은 불법 행위가 지속돼 오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의류수거함 역시 개인의 사욕 때문에 애초의 운영 취지가 퇴색되며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을 챙기려는 얌체족과 잃어버린 기본적인 시민의식 때문에 결국 시민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디자인 개념이 들어간 조형물 제작을 위해선 불필요한 혈세가 낭비되어야 할 테고, 해당 조형물이 설치된 다리를 반 강제적으로 바라 봐야 하는 시민들의 눈엔, 아름다움이 아닌 일부 시민들의 욕심으로 빚어진 볼썽사나우면서도 무언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형태의 끔찍한 도심 풍광으로 가득 들어차게 될 테니 말이다.
일부 시민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쌓이고 쌓여 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고, 특정단체와 결탁하여 개인의 사욕을 챙기는 형태로 변질된 채 시민들의 순수한 마음을 훼손하고 있는 의류수거함은, 어느덧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도심속 흉물로 전락하고 있는 까닭에 가뜩이나 휑한 시민들의 마음을 더욱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의 순수한 마음을 담은 성금을 모아 엉뚱한 곳에 전용하는 말도 안 되는 소식이 간혹 전해져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는 경우가 그동안 비일비재했는데, 의류수거함 역시 그와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 흉측한 교량의 꼴불견까지 본의 아니게 바라 봐야만 하는 이 고통을 우린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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