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덕유산 산행에 나섰던 산악회원 27명이 조난당한 지 12시간 만에 구조됐으나 그 중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부산의 모 산악회 소속인 이들은 지난 16일 오전 11시께 덕유산 산행에 나섰지만, 아침부터 내린 눈 탓에 해발 1,300미터 지점에서 발이 묶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상 여건 등 당시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눈발이 더욱 거세져 어느덧 허리께까지 눈이 쌓여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길이 아닌지 조차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결국 해마저 지고 어둠이 몰려들기 시작할 즈음인 오후 6시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119 구조대에 조난신고를 하게 된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신고 후 4시간 뒤인 밤 10시 40분 가량이었고, 27명 전원이 하산을 완료한 건 다음날 오전 6시 즈음이었으니 구조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7시간 반 가량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구조대원들의 필사적인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구조된 27명 중 저체온 증상을 보이던 한 사람은 끝내 숨졌고, 3명은 탈진과 동상 증상을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산에 올랐던 이들에게는 이번 산행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극으로 남게 된 셈이다.
ⓒ연합뉴스
다른 민족에 비해 유독 산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타고 났다는 우리에게 있어 이번 사고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 크다. 조난 당한 산악회원들이 산행에 나선 지난 16일에는 덕유산 일대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었으며, 때문에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 측에 의해 당시 입산이 통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무리하게 산행에 나섰고, 결국 작금의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건 조난자들이 폭설 속에서도 얇은 옷과 우비 정도만 걸쳤을 뿐 제대로 된 복장 및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산행에 나선 대목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에 불과하겠지만 이번 사고를 복기해 볼 때, 어쩌면 인명 사고 정도는 사전에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선 가장 아쉬운 대목은 다름아닌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기상 악화 상황에서도 무리한 산행을 결정한 부분이다. 물론 별 일 없겠거니 싶은 데다 설경을 보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크게 작용한 탓에 산행을 결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이 사전에 기상 상황을 파악했든 그렇지 않든 그와 상관없이 덕유산 입구에는 입산금지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었을 테고,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산행을 결정한 건 무조건 이들의 잘못이라는 의미가 된다.
아울러 산행 채비와 관련한 부분 역시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폭설이 쏟아지고 있는 산을 오르면서 얇은 옷만 걸치고 제대로 된 장비조차 갖추지 않은 채 움직였다는 건 진정 무모한 행위이다. 적어도 두꺼운 아웃도어 의상과 여분의 속옷 등 최악을 대비한 복장 및 장비만 제대로 갖추었더라도 구조대가 도착하여 이들을 구조하기까지 발생했던 인명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밖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은 또 있다. 한 두 사람이 움직인 것도 아닌, 버젓이 수십명의 회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산행에서 그것도 겨울 산행임에도 어떻게 사전에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며, 더구나 의류와 장비조차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나설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 번에 수십명이 참여할 정도의 규모라면 작은 동호회도 아닐 테고, 적어도 이를 이끄는 리더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숙지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기상 조건과 사전에 갖춰야 할 복장 및 장비 따위에 대해 이를 다른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건 산행의 가장 기본 아니었을까?
결국 4명의 사상자를 부른 이번 사고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 아니었나 싶다. 산이 좋아 산행에 나서는 사람을 막을 재간은 없다. 다만, 아무리 얕은 산이라 해도 일반 평지와 달리 기상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에 늘 최악을 대비하고 떠나야 한다는 건 기본 상식에 속한다. 더구나 이번에 조난 사고가 빚어진 덕유산의 높이는 해발 1,614미터에 이를 정도로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며, 대체로 산이 가파르고 산세가 험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물며 동네 앞산을 오를 때에도 기상 여건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채비하곤 하는데, 덕유산 정도의 험한 산을 오르면서 기상도 살피지 않고 복장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용기일까.
최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전문 산악인 엄홍길 씨조차 산에 대해 언급할 때엔 항상 조심스럽다. 그는 이번 사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있다. "절대로 낮은 산이라고 하여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사고의 유형을 봤듯이 겨울 산에 갈 때는 충분한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더군다나 산행할 때 절대로 체력을 과신해서도 안 되며,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하고, 현지 산행 코스라든가 지형, 시간, 이런 것들을 잘 체크해야 한다."
ⓒ민중의소리
주변에 산이 많고 쉽게 오를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우리에게 내려진 축복일지도 모른다. 타고 난 천혜의 조건을 외국인들이 부러워 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게 한 가지 있다. 비단 이번 사고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안전불감증에 의한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는 생활 공간 곳곳에서 끊임없이 빚어져 왔다. 더구나 산이란 공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기상 조건을 파악해야 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일 테고, 아울러 이를 즐기기 위해선 그만큼 더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될 테다.
일기예보 등 산행을 위한 사전 정보 숙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게다가 다른 때도 아닌 겨울 산행이 아니던가.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일은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 일반적으로 더 큰 체력을 요구한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여 괜찮겠거니 했다가는 이번처럼 자칫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만약 동호회원들과 함께하는 경우라면 반드시 산행 전 회원 개개인의 체력 등 기본 상황을 꼼꼼하게 따져 볼 일이다. 아울러 산행을 결정하였다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복장과 장비 등을 갖추는 것 또한 절대로 잊어선 안 될 노릇이다.
자연 앞에서의 인간은 항상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산이 있어 무조건 오르기보다 가지 말아야 할 때엔 안 가야 함이 옳다. 그럼에도 부득이 가야 한다면 그에 걸맞는 사전 준비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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