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더 로프트 : 비밀의 방> 굳건한 질서 및 관계의 균열

새 날 2015. 10. 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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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여 제각기 가정을 꾸리고 있는 데다 남 부러울 것 없을 정도의 부와 명예를 거머쥔 5명의 남자, 이들은 서로 친구 사이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절친이란 단어가 꼭 알맞을 만큼 친하디 친하다. 그들 중 한 명이자 건축일을 하고 있던 빈센트(칼 어번)가 어느날 도심 한복판에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건물의 방 한 칸을 다섯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자며 제안해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 곳은 매우 세련된 데다 도심 가운데에 펼쳐진 멋진 공간이었으며, '로프트'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방의 열쇠는 오직 다섯개에 불과하고 절대로 복제가 불가능하며 보안장치가 완벽한 탓에 그들 외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일종의 비밀공간이다. 물론 이곳의 자세한 용도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을 않더라도 그들 모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암묵적으로 알고 있던 터다. 일종의 남성들 세계에만 형성돼 있을 법한 묵시적 질서였던 셈이다.

 

 

사실 빈센트의 제안은 매우 음험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다. 절대로 다른 사람, 특히 아내가 알게 되어선 안 된다는 당부가 이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 아니 수시로 일탈을 꿈꾸어오던 수컷들에겐 귀가 솔깃할 만한 제안임엔 틀림없다. 겉으로는 분명 아닌 척 고상을 떨고 있지만, 내심 다른 친구들로부터 열등감 따위를 느끼며 속으로 부러워하던 루크(웬트워스 밀러)에게 조차 그랬다. 구체적으로는 호텔비 결제와 같은 구질구질한(?)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들 아내가 이러한 속사정을 알게 될 경우 분명 펄쩍 뛰고도 남을 노릇이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의 일이다. 그들만의 비밀공간인 '로프트'에서 한 젊은 처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한 손은 수갑에 묶인 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자세였고, 주변은 피로 흥건했다. 이를 처음 발견한 친구에 의해 다섯 명 모두가 호출되고, 순차적으로 도착한 그들은 현장을 보더니 하나 같이 놀라워 한다. 골치 아픈 상황임을 직감하고 이번 사건과 엮이기 싫어하는 눈치임이 역력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모르던 사실을 폭로하거나 알리바이에 여념이 없는데.... 

 

 

이 영화만의 특징을 꼽자면, 판타지, 아니 늘 일탈을 꿈꾸는 남성들이 넘쳐나는 현실 세계에서 어쩌면 충분히 있을 법한 소재를 제법 사실적으로 다루고 이를 묘사한 점과, 성향이 제각각인 다섯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심을 확 잡아끌 만한 반목과 반전적 요소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다섯 친구의 캐릭터가 워낙 다양하고 개성이 있는 터라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따라잡으며 서로 간의 관계를 읽어내는 일만 해도 자못 흥미롭다. 이 영화는 2008년 감독 에릭 반 루이가 벨기에에서 연출한 작품을 2014년 헐리우드를 통해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소위 절친이라고 하지만, 평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거나 속고 속여온 데다 위급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자 상대방을 헐뜯으며 폭로하고 반목하는 모습 속에선 적어도 현실은 이와는 달랐으면 하는 바람과 어쩌면 진짜 현실은 이보다 더욱 지독한 게 아닐까 하는 두 가지의 상충된 생각이 교차하며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처음 방 하나를 놓고 다섯 친구들이 공유하자고 제안해올 때까지만 해도 향후 서로 간의 관계가 흐트러질 것이란 의심 따위 절대로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니 적어도 남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만큼 묵시적으로 형성된 질서에 의해 그 어떠한 경우라 해도 비밀 유지가 이뤄질 것이라 장담했을 터다. 이러한 암묵적 약속 하에 그들은 방의 열쇠를 서로 나누어 가지게 되고, 이후 '로프트'에서는 은밀한 일탈 행위가 시시각각 벌어져오곤 한다.

 

 

일견 남자들 세계에서의 암묵적 질서는 상당히 견고해 보인다. 더구나 남도 아닌, 적어도 절친이라는 끈끈한 관계가 그에 더해지니 그들 사이에서 만큼은 이를 절대로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테다. 하지만 한 여성의 죽음 뒤에 얽힌 무수한 사연 및 사건들은 남자들만의 암묵적 관계나 절친으로서의 관계 따위마저 모두 균열을 일으키게 하고도 남는다. 각자의 치부가 드러나게 되고, 또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상대방을 몰아붙이거나 헐뜯는 모습은 그야말로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답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작품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범인을 특정짓게 하려는 시선 분산이 수차례 시도되기도 하거니와, 결말로 치달을수록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묘미도 맛볼 수 있다. 실제 남성들 세계에서 이뤄질 법한 내밀한 사안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과 무척 견고할 것이라 여겨져왔던 관계 및 믿음조차 작은 이해관계 앞에서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감독  에릭 반 루이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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