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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변호사> 이선균의 원맨쇼 그리고 반전의 묘미

새 날 2015. 10. 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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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엉뚱발랄한 데다 나이마저 젊어 보이고 패셔너블하기까지 하여 그의 진면목을 모르는 이들로부터는 어쭙잖은 햇병아리 변호사로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그러한 편견과는 달리 변호성(이선균) 변호사 그는 실제로 국내 굴지의 로펌 에이스다. 적어도 그가 투입된 사건만큼은 어떤 경우라 해도 백전백승에 이를 정도로 변변의 활약상은 뛰어났으며, 평소 이기는 게 곧 정의라는 신념을 간직한 탓인지 승부욕 또한 남다른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로펌 대표가 사건 하나를 의뢰하기 위해 그의 방을 찾는다. 그녀가 들고온 건은 겉으로 볼 때엔 평범해 보이기 짝이 없는 단순 살인사건에 불과하다. 다만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살해된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모 기업 회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인 용의자를 변호해 달라며 직접 의뢰해 왔다는 점 정도다. 일단 사건 수임을 결정한 이상 에이스이자 프로답게 모든 초점을 철저하게 의뢰인 중심으로 맞춘 채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변 변호사, 그는 파트너인 사무장(임원회)과 함께 현장을 누비며 종횡무진 증거물을 확보해 나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을 지휘하는 수사기관 측 인물은 한때 변 변호사의 후배이기도 했던 데다 그 누구보다 정의감으로 충만한 까칠 도도녀 진선민(김고은) 검사다. 드디어 재판날이다. 유력 용의자가 피의자임을 증명하기 위한 진 검사의 진술과 반론이 이어지고, 역으로 변 변호사는 용의자가 피의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후배인 진 검사의 진술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몰아붙이더니 결국 최후의 승기를 잡는 듯싶으나, 용의자가 갑자기 자신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하며 분위기는 삽시간에 반전되는데...

 

 

변호성 배역을 맡은 이선균의 끼 넘치는 활약과 맛깔스러운 연기 덕분에 오히려 이 영화를 정통 법정 영화라 부르기가 다소 민망해진다. 변호사라는 기존의 통념을 깡그리 깨부술 정도다. 수트를 매끈하게 쫙 빼입었지만 신발은 하얀 운동화에 백팩을 매고 검은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상당히 트렌디해 보이는 변호사 캐릭터는 이선균 그가 아니면 아무도 소화해내지 못했을 듯싶다. 비단 패션뿐만이 아니다. 날카로운 반론과 능청스러움 그리고 통쾌함까지, 이선균의 원맨쇼라 칭해도 될 만큼 그의 역할과 비중은 상당했다. 이선균은 전작이었던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도 대단한 연기력을 선보인 바 있지만, 그보다 한층 더 진화한 모습이다. 그를 위한 영화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에게 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의 연기 덕분에 그나마 영화의 결이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지도..



뛰어난 능력을 갖췄으나 오직 돈과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며 닥치는 대로 사건을 수임할 것 같은 변변과 오롯이 사회 정의를 위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의 후배 진 검사는 서로 대비되는 캐릭터다. 영화속에서 두 사람이 사사건건 부딪히는 것도 다름아닌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며 사람 목숨까지 마음대로 다루거나, 몹쓸 갑질 행위를 밥먹듯 일삼는 재벌의 편에 서서 그들의 변론에 나선 변 변호사와 반대로 죄악을 저지른 이들에게는 반드시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며 서슬퍼런 의지를 내비치는 진 검사의 대결 구도가 이 영화의 핵심 축을 이룬다. 재벌이야 그렇다손 쳐도 로펌조차 철저하게 돈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으로 묘사되어 있는 점은 씁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비록 허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법정 다툼의 개연성 등 어쩌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질 법한 사실들이기에 해당 설정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연출력이 다소 어설펐던 점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소이기에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군데군데 세련미 부족한 신과 이 영화만의 자랑으로 꼽았던 도심 추격 액션신의 긴장감 떨어지는 장면 등은 결국 연출력 부족 탓으로 보인다. 이선균이 워낙 출중한 때문인지 다른 캐릭터들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한 점 역시 옥에티다. 임원희는 간혹 그만의 특유의 썰렁한 웃음을 선사해주고는 있지만, 배역의 비중이 너무 작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김고은이 이선균과 극과 극의 대비되는 캐릭터를 맡은 건 그녀에겐 어쩌면 불행일지도 모른다. 이선균의 연기가 탁월한 탓에 그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요소요소에 감독의 노력한 흔적이 배어 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대법원 로케이션을 성사시켰다는 대목이 바로 그에 해당할 듯싶다. 변호성의 기자회견 장면이나 몇 차례 등장하는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신은 모두 실제 대법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선균이라는 인물과 반전의 묘미를 빼고 본다면 어쩌면 팥 없는 단팥빵과 같은 영화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이선균이 제 역할을 100% 이상 소화해낸 데다 극적인 반전 요소가 갖춰진 탓에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었으며, 가볍게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라 생각된다.

 

 

감독  허종호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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