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미스터 하이네켄> 어설픈 납치범과 카리스마 인질이 만날 때

새 날 2015. 9. 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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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70년대말에서 80년대를 관통해 갈 즈음, 최악의 경기 불황을 겪고 있는 와중이다. 코(짐 스터게스)와 윌렘(샘 워싱턴)을 비롯한 친구들은 마땅한 일감을 찾지 못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 시도하나, 가진 게 전무한 탓에 그들에겐 이마저도 녹록지가 않다.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던 그들, 결국 철창행 신세를 지고만다. 얼마 후 다시 뭉쳐 보다 원대한 꿈을 계획하게 되는데, 이를 실행하기에 앞서 일정 수준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은행을 털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무언가 어설프기도 하거니와 끔찍한 범죄 조직과는 왠지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들이거늘, 놀랍게도 완전범죄를 꿈꾸더니 결국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제 본 계획을 실행할 차례다. 구체적으로는 억만장자를 납치하여 몸값을 받아낼 계획이다. 납치 대상도 이미 정해졌다. 맥주 부호인 하이네켄으로 낙점했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 과정을 거친 끝에 드디어 그를 납치해오는데...

 

 

1983년 빚어졌던 네덜란드 맥주 부호 하이네켄의 납치 실화를 그린 영화다. 하이네켄은 맥주회사인 하이네켄을 경영하며 광고부를 도입하고 독특한 로고 제작을 지휘하는 등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한 끝에 이를 일약 세계 굴지의 맥주 브랜드로 키운 인물이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괴한에게 납치되어 3주만에 몸값 1,600만 달러를 치르고 풀려난 일이 있다. 이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을 만큼 사상 최고의 몸값으로 평가 받는 사건이기도 하다. 하이네켄은 납치사건 이후 공식적인 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일절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납치된 하이네켄(안소니 홉스킨)은 회사 경영 일선에서 발휘했던 뛰어난 수완 이상으로 다른 영역에서도 대단한 인물임을 은연 중 드러낸다. 적어도 이 영화 속에서 표현된 그의 모습만을 놓고 볼 때 말이다. 복면으로 얼굴 전체를 감싼, 마치 IS대원을 연상케 할 정도로 끔찍하게 생긴 납치범들을 오히려 주눅들게 만드는 당당함과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탓이다. 안소니 홉킨스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납치범 수 명을 합쳐도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훨씬 더 대단한, 그러한 종류의 것이다. 납치범들은 완력으로 하이네켄을 압도하려 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의 카리스마에 제압 당하는 느낌이다. 납치범과 인질 사이의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신경전이 바로 이 영화의 포인트다.

 

 

자신들이 원하는 기한 내 몸값을 받지 못해 초조해 하는 납치범들의 상황, 그리고 도무지 어디인가 종잡을 수 없는 공간에 손발이 묶인 채 감금되어 시시각각 조여오는 살해 위협의 섬뜩한 공포를 직접 대면해야만 하는 인질들의 절체절명의 상황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두 진영간의 치열한 수싸움과 심리전은 시작된다. 단순히 범죄 행위를 모의하고 이를 좇는 재미보다 납치범과 하이네켄이라는 걸출한 인물과의 미묘한 심리 싸움이 이 영화의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는 범죄 영역이라고 하여 결코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하이네켄을 납치하여 전대미문의 몸값을 요구했던 이들은 사실 우리가 영화 속이나 보도매체를 통해 흔히 접해오던 악독한 유형의 인물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총기를 사용하면서도 사람이 다칠까 봐 부러 표적을 피해 쏠 정도로 본성은 여리디 여린 사람들인 탓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조차 돈이 돈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사회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 만큼은 그동안의 삶을 통해 제대로 체득한 듯싶다. 하이네켄을 납치할 때 어설프게 보일 경우, 이들을 추적해올 경찰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사람들조차 하찮은 범죄조직이라 여기며 우습게 받아들인 채 쉽게 붙잡힐 공산이 크니, 최대한 그럴듯한 범죄조직,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조직으로 포장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서라도 철저한 계획과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속 하이네켄에 의하면 세상엔 두 종류의 부자가 존재한다. '돈을 많이 가진 자'와 '친구를 많이 가진 자'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명확한 건 둘 모두를 동시에 가질수는 없다는 사실일 테다. 영화의 흐름을 주욱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일성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님을 금세 터득하게 된다.

 

요즘 헐리우드에서 한참 핫한 짐 스터게스와 샘 워싱턴 같은 젊은 배우 그리고 여전히 강렬한 카리스마를 잃지 않고 있는 안소니 홉킨스처럼 노련미 넘치는 배우가 함께 출연하여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희대의 납치사건 실화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만으로도 사실 관객들을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스톡홀롬 증후군과는 달리 인질의 카리스마와 여유에 압도당한 채 갈등을 겪게 되는 납치범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바라보는 일 또한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감독  다니엘 알프레드손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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