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미라클 벨리에> 따뜻한 배려와 감동이 돋보인 영화

새 날 2015. 8. 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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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폴라 벨리에(루안 에머라)는 다소 억척스러워 보인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 탓이다.  폴라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청각 장애인인 탓에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의 사업부터 시작하여 소소한 가정사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폴라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때문에 한참 감수성 예민한 또래 아이들처럼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그저 학교와 집 그리고 농장만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게 그녀가 현재 취할 수 있는 삶의 전부다.  그녀의 유일한 낙이라면 학교와 집을 오갈 때 흔히 이용하곤 하는 자전거를 타며 즐겨 듣던 음악에 심취하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새학기가 시작되고, 특별활동반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가브리엘 세바뇽(일리안 버갈라)의 멋진 자태에 눈길이 절로 끌린 폴라, 특별히 선택할 게 없었던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가 택한 합창반에 따라 들어가게 된다.  별 다른 생각 없이 가입한 합창반이었거늘, 뜻밖에도 합창반 선생님(에릭 엘모스니노)의 눈에 뜨인 그녀의 음악적 재능, 파리 국립학교 공개 오디션에 응해도 될 정도의 가능성을 인정 받은 그녀는 의외의 결과에 스스로도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사실상 가족 모두를 돌보고 있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는 상황인데...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다.  비단 프랑스 개봉 당시 박스 오피스 1위라는 선전 문구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만이 지닐 수 있는 진솔함과 묵직한 감동 때문이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다름아닌 베로니크 풀랭의 자전적 이야기 '수화, 소리, 사랑해!'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실제 인물 베로니크는 이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하여 얼굴을 잠깐 비친다. 

 

주인공 폴라 역을 단숨에 꿰찬 신인 배우 루안 에머라는 프랑스 인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더 보이스 프랑스 시즌2'의 출연자였다는 점과 2015년 세자르영화제(40회)에서 신인 여우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은 꽤나 흥미롭다.  참고로 지난 18일에 폐막된 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이 작품은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후보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아울러 프랑스 샹송의 거장으로 알려진 미셀 사르두의 노래를 새롭게 OST로 내놓아 프랑스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실제로 영화 속 폴라의 목소리는 이른바 꿀성대라 칭해도 될 만큼 찰지면서도 구성지다.  그녀가 가브리엘과 함께 연습을 시도하며 첫선을 보인 샹송 '사랑의 열병' 한 소절만으로도 그녀의 재능은 엿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 제작사는 그녀의 온전한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하는 이들로 하여금 OST 음원 판매로 이끌기 위한 전략을 펴는 듯싶다.  제대로 된 그녀의 공연 모습이 못내 아쉽게 다가오는 탓이다.  한 마디로 감질난다.  음악 영화라고 하기엔 다소 밋밋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 영화만이 지닌 매력 포인트는 과연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오류는 지루함 내지 억지스러움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만큼은 그러한 걱정으로부터 일단 몇 걸음 멀찍이 떨어져 있다.  음악 장르로 분류되면서도 드라마적인 요소와 코믹 장르까지 두루두루 걸쳐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루할 틈이 없다.  아울러 억지 감동을 주려는 시도 또한 없다.  복잡다단한 연출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탓이다.  가벼우면서도 무언가 묵직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청각 장애인 가족 중 유일하게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폴라에게 짐지워진 운명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내색없이 오히려 밝고 쿨하기만 하다.  대견할 정도다.  그맘 때면 누구나 겪는다는 성장통 역시 그녀에게는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기인할 뿐이다.  그리 흔치 않은 경우임에 틀림없다.  엄마 아빠를 비롯한 동생마저 모두 듣지 못 하는 처지에서 오로지 그녀만이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결과는, 어쩌면 그들 가족 모두에겐 축복이 아닌, 실은 두려움의 잉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폴라와 그녀의 가족들이 이를 과연 어떻게 극복해낼까?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발견된 뒤로 폴라는 더 이상 가족을 돌볼 수 없게 된다는 미안함 때문에, 아울러 그녀의 가족은 폴라가 떠날 경우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곤혹스럽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들이 서로 교차하며 가족 간 갈등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다혈질인 아버지와 온화한 어머니 그리고 다소 엉뚱발랄한 남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상당히 코믹하지만, 앞의 이유 때문에 가슴 찡한 뭉클함을 선사해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영화, 여러모로 참 배려 깊은 면모가 엿보인다.  청각 장애인인 폴라의 가족들에게 있어 합창단의 공연 장면이 과연 어떤 식으로 비칠지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관객들에게 무음의 공연장면을 선사해 준다.  가슴 뭉클하다.  특히 소리를 듣지 못 하는 아빠가 딸의 독창 장면을 그저 눈으로만 보며 주변 사람들의 환호하는 장면에 함께 조용히 호응하면서도 못내 딸의 재능을 확인할 방법이 없던 찰나,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게 한 뒤 딸의 목에 손을 대고 그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은 두고두고 잊지 못 할, 이 영화만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음악을 통해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하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가족과 주변인물로부터는 웃음을 선사받을 수 있으며, 실화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한 감동까지, 3박자를 두루 갖춘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몹시 행복한 영화다.  폴라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 모든 갈등 요소를 극복하고, 그녀가 부르던 노래 '비상'의 가사처럼 과연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까?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 해요
오늘부터 두 분의 아이는 없어요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뿐
알아 주세요 비상하는 거예요
술기운도, 담배 연기도 없이
날아가요 날아 올라요”

 

 

감독  에릭 라티고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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