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조희연 선고유예, 진보교육정책 탄력 받나

새 날 2015. 9. 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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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의 유죄를 선고 받아 당선 무효의 위기에 놓였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4일 열린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날 열린 서울고법 형사6부는 조 교육감의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1심을 파기하고 일부 유죄로 판결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고승덕 후보에 대한 2차 의혹 제기에 대해 미필적 고의 등이 있었다며 이를 유죄로 판단했고, 다만 허위사실 유포는 인정되나 공직 적격 검증을 위한 의도였으며 악의적 흑색선전이 아니었기에 비난 가능성이 낮은 데다, 이후 조 교육감의 지지율이 오히려 하락한 것을 볼 때 이러한 행위가 선거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유죄 부분에 대한 벌금 25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것입니다.

 

선고 유예란 범행이 경미한 죄과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를 일컫습니다. 이의 처분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벌금형 중 개전의 정상이 있거나 동종 전과가 없을 경우 가능합니다.

 

ⓒ노컷뉴스

 

이러한 판결 결과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판이했습니다. 새누리당은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육감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주춤했던 조 교육감의 진보 교육정책이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교직자 단체인 한국교총은 판결과 상관없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 운동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헌재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렇듯 이른바 보수와 진보 진영이 바라보는 이번 판결은, 각기 지향점을 달리하고 있는 이념의 간극만큼 극과 극의 반응 일색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좌초 위기에 직면할 뻔 했던 조 교육감을 비롯한 진보 교육감들의 교육 정책이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 힘을 받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파장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서울 모 공립고등학교 교사 성추행 사건에 대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건, 그 성격상 조 교육감과 같은 진보 이념을 띠고 있는 진영이 훨씬 믿음직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조 교육감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게 다가오던 터입니다. 조 교육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뒤 이번 사건 대응 과정에서 일부 직원이 감사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등 하극상에 가까운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습니다.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세력을 흔들고 흠집을 내기 위한 배경이라는 담당 감사관의 하소연이 괜한 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다시 힘을 얻은 조 교육감 측은 이러한 모종의 배후 세력의 방해를 물리치고 공립고 교사 성추행 사건이나 사립유치원의 비리 사건 등의 대응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 전망되는 터입니다. 입시 부정과 각종 특혜 의혹을 받아온 하나고 특별감사 진행 역시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그밖에 조 교육감이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정책 중 하나인 일반고 살리기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 그리고 학생인권옹호관과 청렴시민감사관 제도, 혁신학교 확대 등 진보교육정책의 순항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보교육의 상징이자 대표격인 조 교육감이 이번 판결을 통해 안정을 되찾게 되면서 전국 교육계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편 새누리당과 한국교총이 이번 판결이 끝나자마자 교육감 선거 직선제 폐지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일성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연설을 통해 교육감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국론 분열과 국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지역별 편향 교육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어 국회 내 특위를 구성해 교육감 선출제도의 틀을 바꿔야한다며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건 이번 판결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결과물에 다름아닙니다. 아울러 그동안 비등했던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이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게 된 현실의 불안감을 이런 방식으로 발현시킨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입니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직선제 폐지론이 당장 힘을 잃게 될 것이란 점 아닐까 싶습니다.

 

ⓒ뉴스1

 

2008년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총 4명의 서울시교육감 중 지금까지 2명이 중도하차한 바 있습니다. 법원에서 선거법위반이 인정되면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공정택, 곽노현 전 교육감이 그들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바로 보수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교육감 선거 직선제 폐지론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 수장인 교육감을 교육 주체들의 손으로 직접 뽑는 교육감 직선제는 시민들이 교육 정책과 관련한 교육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교육자치의 토대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제도입니다. 이러한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보완해 나가면 그만일 일을 아예 직선제를 폐지하자며 주장하고 나선 건 분명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내비치는 결과입니다. 아마도 그 이면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와 같은 조직적이면서도 집요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검찰이 이번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상고의 뜻을 분명히 함에 따라 조 교육감의 교육감직 유지 여부는 결국 대법원에서 판가름나게 됐습니다. 때문에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오며 2명의 서울시교육감을 중도하차시킨 이른바 ‘교육감 잔혹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하지만, 이번 선고유예 판결이 조 교육감에게 매우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놓았다는 데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조희연 교육감이 당분간 부담없이 교육감직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데다, 그가 펼치는 교육정책이 이재정 교육감의 언급처럼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란 사실에 대해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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