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중학생 학교 폭발 테러가 우려스러운 이유

새 날 2015. 9. 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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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오후 1시 50분경,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과거 이 학교에 다니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학생이 3학년 교실에 몰래 들어가 부탄가스통을 폭발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빈 교실을 노린 탓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폭발 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교실 창문과 출입문, 벽 일부가 부서지는 등 자칫 큰 참사로 이어질 뻔한 터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이 학생은 범행 당일 밤 서울 송파구의 한 공원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각 언론 매체엔 학생의 범행 동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경찰의 수사가 더 진행돼 봐야 보다 정확한 범행 동기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겠지만, 학생의 과거 행적과 검거되기 전 언론사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학생은 불특정다수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음이 명백해 보인다. 특히 지난 6월 특정하지 않은 사람을 흉기로 찌르려 했고 학교에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르려다 실패한 사실과 모든 사람이 싫다고 말한 증언은, 결국 적응에 실패한 개인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불특정다수에게 화풀이하며 어떤 식으로든 앙갚음하려 한 과거의 범죄 사례들과 맞닿아 있다. 물론 지극히 뻔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전학을 간 학교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해 어려움을 겪었다거나 친구들과의 갈등 따위가 범행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얼마 전 우리의 간담을 써늘케 했던 자칭 극우커뮤니티 '일베'에 심취했던 한 고등학생의 토크 콘서트장 폭탄 테러 행위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결과는 비슷한 테러 행위이나 타깃 등 범행 접근 방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범행을 저지른 후 범행 과정을 동영상에 직접 담아 SNS에 공개했다는 대목에선 며칠 전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 벌어졌던 기자 총격 살해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의 범인 베스터 리 플래내건이 조승희 사건을 이번 범행의 동기라고 읊었던 기록이 남아 있듯, 중학교에 테러 행위를 자행한 학생 역시 조승희처럼 범행 기록을 남기고 싶었노라는 인터뷰는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그가 남긴 4분 분량의 동영상을 직접 보니 조승희를 언급한 게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자신의 범행에 의해 학교 건물에서 연기가 나고 학생들이 우왕좌왕하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보며 무척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불특정다수를 향해 마치 중계방송이라도 하는 양 당시 상황을 떠벌리며, 심지어 기대했던 것보다 미흡했던 테러 결과가 못내 아쉬웠던지 이럴 줄 알았으면 부탄가스 하나를 더 가져 왔어야 한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전문가가 아닌 식견으로도 일종의 과대망상 따위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에서의 총격 살해 사건이 벌어지고, 해당 범행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범행 등장을 우려했던 적이 있다. ('SNS 시대가 빚어낸 끔찍한 부작용' 포스팅 참조) 그런데 이 글을 작성한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터라 더욱 충격적으로 와닿는다. 온라인 소통도구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한 SNS는 그 특성상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목을 끌기 위한 도구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조차 걸러지지 않은 채 가감없이 전해지는 SNS상에서의 무분별한 콘텐츠는 심신이 미약한 이들의 정신과 사상을 마비시킨 채 모방 범죄에 심취하도록 만들기 일쑤다. 이는 범죄 행각을 빚고 있는 기제와 더해지며 상승효과마저 불러오고 있는 형국이다.

 

증오범죄가 됐든 아니면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을 노린 범죄 행위가 됐든, 이는 경쟁 일변도의 현대사회가 낳은 구조적인 모순이자 문제점 중 하나일 테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낙오자의 처지로 내몰리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즉, 개인 일탈에 의한 이러한 류의 범죄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방식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사회 전반과 구성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범죄 행위가 아닌, 미국의 총격 사건이나 중학교 테러 사건에서 보듯 SNS상에서의 자기 과시나 인정 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콘텐츠를 양산해내고, 또 이에 노출된 채 비슷한 방식의 다른 범죄 행위로 이어지고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번 중학교 테러 사건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SNS에서는 보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올려야 조회 수가 높아지며 인기를 끌고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기에 갈수록 독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건 청소년은 아직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가치관이 덜 정립된 인격체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 생각조차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단순히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 장면을 따라하거나 범죄자를 영웅시할 수 있는 개연성이 다분하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일본에서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참수 행위를 청소년들이 모방한 듯한 끔찍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여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SNS 시대는 분명 우리 사회에 많은 이득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낳고 있다. 물론 모든 현상엔 명암이 양립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앞으로도 조승희 등 흉악 범죄자를 흠모하며 또 다른 범죄 행위를 꿈꾸거나 미국 방송국 기자 살해 사건 혐의자와 중학교 테러 범죄자를 영웅시하며 모방범죄가 발생할 개연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음식도 자극에 맛들일 수록 더욱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돼 있듯 SNS상에서 보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너와 내가 존재하는 한 비슷한 범죄 행위를 막을 재간은 없어 보인다. SNS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듯 이제 범죄 행위도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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