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개별소비세 인하 등 세제정책, 누구를 위함인가

새 날 2015. 8. 2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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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민간 소비를 활성화시키겠다며 자동차나 대형가전 등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일정기간 세율을 내려 위축된 내수 소비를 진작시키고자 함이 그의 취지다.  개별소비세란 특정한 물품이나 용역의 소비에 대해 특정의 세율을 선별적으로 부과하는 소비세로서, 원래는 주로 사치품에 붙는 '특별소비세'로 불렸으나 그 이름이 바뀐 것이다.  '특별소비세'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는 고소득층의 낭비와 사치생활의 풍조를 억제하고 균형되고 건전한 소비생활을 영위토록 하기 위해 마련된 간접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26일 경제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승용차와 대용량 가전제품, 녹용 및 로열젤리, 방향성 화장품 등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30% 인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비 대책을 발표했다.  개별소비세 인하의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될 업종은 다름아닌 자동차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자동차 가격의 5% 정도가 개별소비세에 해당하기에 이번 인하 조치로, - 물론 차종에 따라, 아울러 같은 차종이라 해도 옵션에 따라 일정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 통상 중형차의 경우 50만원, 1억원이 넘는 고급차의 경우 200만원 가량의 직접적인 가격 인하 효과를 보게 될 전망이다. 

 

MBC 방송화면 캡쳐

 

자동차가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정부는 이번 조치가 자동차 판매로 이어지며 경제성장률 0.025% 포인트 정도는 충분히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는 입장이다.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자동차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2000년대 들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하지만 형평성 논란도 만만찮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기 부양책인 것인지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이번에 인하되는 품목을 요목조목 살펴보면 이로 인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계층이 보편적이라기 보다 특정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앞서도 기술했듯 개별소비세 인하 품목의 대표격은 자동차다.  아울러 대형 가전, 고가의 건강식품과 향수 등 고급 화장품 등이 이에 해당한다.  평범한 서민들에겐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제품이라기보다 특별한 경우에 구입하게 되거나 어쩌면 평생 가야 단 한 차례 정도 구입할까 말까 한 제품이 다수를 이룬다.  정부가 또 다시 부자감세에 나섰다는 격한 표현들이 괜한 게 아니다.  야당이 27일 정부가 내수를 살린다며 개별소비세를 인하키로 한 것에 대해 “부자 정책”,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매출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에 나선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의심스러운 건 비단 이번 개별소비세뿐만이 아니다.  오늘자 헤럴드경제 기사 <"726만원 對 6766만원"..'형평성 위배' 논란부르는 업무용차 세법개정안>를 통해서도 정책의 방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난 6일 정부가 내놓은, 고가 업무용 차량의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한 총비용의 50%까지 일괄 경비 처리하는 세법개정안을 두고도 조세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의 핵심은 경비 처리의 상한선이 없다 보니 비싼 차를 운용하는 사업주일수록 제도상의 허점을 악용해 탈세할 여지가 많다는 점일 테다.

 

ⓒ동아일보

 

이번 세법 개정안이 영세업자들에겐 사실상의 세금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면, 경비 처리 상한선이 없다 보니 고가의 업무용 차량일수록 세금 감면 폭이 커져 오히려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모순된 구조인 탓이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지금까지 영세업자가 1630만원의 승용차를 경비 처리하면 5년간 1452만원에 해당하는 세액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었으나, 개정 세법에 따라 726만원 이상의 세금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반면, 2억5200만원짜리 최고급 세단을 운용할 경우 5년간 6766만원이라는 세금을 덜 낼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는 셈이니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이와 같은 세법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엔 고급 승용차를 법인 차량으로 리스해 절세 수단으로 악용하는 등 허점 투성이인 현행 세제가 존재한다.  그동안 대기업은 물론이거니와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과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고급 승용차를 법인 명의로 리스할 경우 차량 구입부터 기름값 등 유지비까지 법인명으로 인정받아 영업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법인세와 사업소득세가 줄어들기 때문에 세금마저 덜 걷히게 되는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법인차 리스 등으로 감면된 세금만 1조원인 것으로 추산된다.


ⓒ일요경제

 

그러나 세법 개정안이 영세업자들에겐 오히려 더 없이 불리해지고, 법인이나 고소득업자 등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되는 셈이니 애초의 법 개정 취지마저 무색해질 지경이다.  탈세를 일삼아 온 일부 계층 때문에 영세업자들만 폭탄을 안게 된 셈이다.  작금의 경기 침체는 가계 소비 감소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인데, 상대적으로 부유층 소비 품목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인하하는 정책과 부자들의 절세 수단 악용을 막기 위해 개정한 세법이 오히려 영세업자들만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이러한 정책은, 계층 간 불평등을 야기한 채 서민들의 불만을 더욱 가중시킬 공산이 크다.  

 

한 매체가 이달 초 20대에서 50대까지의 남녀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9.2%는 개별소비세 인하에 따른 소비 활성화 효과가 일부 계층에 그칠 것이라 내다봤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지난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때에도 다수의 계층에겐 남의 일에 불과했으며 상대적 박탈감만을 더욱 부추겼듯, 이번 정책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양상이다.  서민들이 조세형평성을 주장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절대로 허투루 받아들여선 안 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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