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회의원의 자녀 취업 청탁에 분노하는 이유

새 날 2015. 8. 1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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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의 아들이 지난달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공단 측이 자격심사 기준을 완화해줬다는 특혜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이번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윤후덕 의원이 2013년 LG디스플레이의 변호사 채용 당시 해당 기업 대표에게 직접 연락하여 딸의 지원 사실을 알리며 취업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두 분 자녀 모두 직업이 변호사인 것으로 보아 매우 훌륭한 환경과 제대로 된 뒷바라지를 통해 성장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지위 내지 상징성만을 놓고 보더라도 이는 그리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마도 부모가 국회의원이라는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 후광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비롯한 서민들은 이 대목에서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요. 

 

ⓒ국민일보

 

왜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능력이 미천한 탓에 저분들만큼 자녀 뒷바라지를 원없이 해주지 못 한 사실이 원망스럽게 다가올 테고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녀 취업할 때 저분들만큼 힘이 없어 청탁 한 번 의뢰할 수 없는, 변변치 못 한 현실이 너무도 개탄스럽게 와닿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년 취업 절벽 시대이거늘, 이러한 현실은 한 마디로 돈도 없고 백도 없는 암울한 처지에 대해 한탄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취업 청탁 사례는 그동안 비일비재했던 게 사실입니다.  비단 국회의원뿐이겠습니까?  서로가 쉬쉬 하고 있지만, 소위 힘 있고 권력을 누리는 계층에선 암암리에 행해져 오던 관행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합니다만,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다 보니 이젠 보다 교묘한 방법을 통해 이뤄지곤 하는 듯싶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원들의 취업 청탁 사례가 기자들에게 포착되어 물의를 일으킨 적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업 청탁을 하는 내용의 문자가 기자에게 포착된 바 있으며, 같은 당 김희정 의원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오제세 의원 역시 비슷한 방식의 취업 청탁을 의심 받아 곤혹을 치렀던 적이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만큼 국회의원 사회에서의 취업 청탁은 일상과도 같이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왜 하필 서두에서 언급한 두 의원의 청탁 의혹에 대해서 만큼은 다른 경우보다 이렇듯 분위기가 험악한 걸까요?  과거에도 흔했고 지금도 사회 각계에선 여전히 비슷한 사례들이 일어나고 있을 법한데 말입니다.  물론 그 이유, 너무도 단순명료합니다.  청년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사회 고위층의 반칙 행위는 그 어느 때보다 눈엣가시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이후 7%대에 머무르던 청년실업률은 올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더니 마침내 두 자릿수를 찍고 말았습니다.  지난 6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10.2%에 달하고 있으며, 실업률 통계에 누락된 잠재적 구직자 등 취업 애로계층만 해도 115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청년고용률은 10여 년째 40%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는 OECD 평균과 비교하여 3분의 2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급박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정부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 대책’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취업 절벽과 취업 빙하기라는 말까지 등장한 데 이어 우리 청년들을 향해 '오포세대'라고 하거나 '청년’에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현상은 청년들의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하게 와닿는 건 청년층 일자리의 질 또한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일 것입니다.  LG경제연구원이 18일 발표한 ‘청년실업으로 인적자본 훼손된다’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개발, 컨설팅, 엔지니어링 등 전문 과학기술 분야의 청년 취업 비중은 2007년 34.5%에서 올해 상반기 22.5%로 크게 떨어졌으며, 교육 금융분야 역시 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농림어업이나·음식숙박업의 청년 취업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이 진입이 훨씬 수월한 영역으로 대거 몰린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일보

 

이렇듯 취업 빙하기 시대에 피 눈물을 흘리는 청년들이 부쩍 늘어난 상황에서 이른바 사회 지도층 내지 고위 계층의 자녀들은 이러한 고달픈 분위기에 아랑곳 없이 부모 잘 만난 덕분에 취업의 어려움조차 전혀 느끼지 못 한 채 일반 서민들은 계단을 통해 힘겹게 오르는 길을 고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단숨에 오르고 있으니 뿔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는 등의 지난한 노력은 이들의 반칙 덕분에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이들 국회의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쪽에서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만들어 노동개혁에 나서겠다고 하거나 다른 한쪽에서는 재벌개혁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확보하겠다고 부르짖던 사람들 아니던가요.  

 

국민들 앞에선 온갖 감언이설로 챙겨주는 척 하더니, 정작 뒤로는 이렇듯 현대판 음서제와 같은 반칙 행위를 일삼으며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일반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키우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혹여 정부와 집권여당이 내놓은 대책이 효과가 좋아 청년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뭐할까 싶습니다.  반드시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소위 사회적 지위가 제법 있다거나 아주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쥔 자들 저마다 좋은 일자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다 꿰차고 나면, 결국 일반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건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이나 알바와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밖에 더 있겠나 싶은 겁니다.  청년들의 눈물을 유도하는 이들의 취업 청탁에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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