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불효자식 방지법' 발의, 법의 잣대에 맡겨진 효(孝)

새 날 2015. 8. 1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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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이른바 '불효자식 방지법'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으면 맞게 된다거나, 그렇다고 하여 그 반대로 물려줄 경우 이번엔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반 우스갯소리는, 단지 농담만으로 그치는 게 아닌, 사회 전체 및 개인의 윤리적 책임 의식의 고갈과 허점 투성이인 현행 법 때문에 흔치는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간혹 현실로 나타날 법한 사안이다.  불효자식 방지법은 이러한 우리네의 현실을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3일자 한국일보 기사에서 언급된 한 사례가 이해에 도움을 줄 것 같아 인용해 본다.  

 

재산 배분 문제에 불만을 품고 10년 동안 연락을 끊은 채 지내 오던 장남이 어느날 갑작스레 나타났다.  그러고선 “그 동안의 불효를 용서해달라. 앞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제사도 모두 지내겠다”며 동생들과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약속한다.  그는 효도에 대한 반대급부로 아버지 소유의 땅을 자신에게 상속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가족들은 그의 뜻을 존중하여 재산 상속에 흔쾌히 동의했다. 

 

ⓒ한국일보

 

장남은 아버지와 뇌졸중을 앓던 어머니를 약속대로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소유한 땅의 소유권 이전 등기가 완료되자 태도가 돌변한다.  등기를 마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어머니를 노인병원으로 보냈고, 어머니가 사망하기 네 달 전부터는 병원비마저 끊은 것이다.  격분한 아버지는 “상속의 전제가 된 효도가 없었으니 땅을 돌려 받아야겠다”며 장남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법원은 “부자간의 약정이 있었더라도 이미 완료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아버지의 소송을 기각하고 만다.  (한국일보 상속 받아내고 불효… '먹튀 자식' 방지법 만든다 기사에서 인용)

 

현행 민법은 자녀가 부양 행위를 하지 않거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 증여와 관련한 재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법 588조에 따르면 계약 이후 아직 증여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진행 중일 때에만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이미 증여가 완료된 경우엔 계약 해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 하도록 명시돼 있는 탓에 작금의 상황이 빚어진 셈이다.  결국 불효자식 방지법은 문제가 되는 민법 조항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개정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친족 폭행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자식으로부터 폭행 등 학대를 경험한 부모는 10%선에 이른단다.  물론 이는 보통 가정 내에서 은밀히 일어나는 행위라 밖으로 드러난 통계보다 실제 수치는 더욱 클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현재 친족 폭행 사건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이자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처벌을 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탓에 친족 폭행 사건의 처벌은 대부분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많아 이 역시 해당 법 조항의 삭제를 통해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재산만을 노리거나 심지어 부모를 폭행하기 까지 하는 이 땅의 불효 자식들을 직접 겨냥하여 이름 붙여진 '불효자식 방지법'의 발의는 2년전 중국에서 부모 봉양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한 "노인권익보장법"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 내용은 판이하지만 말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60세 이상 부모를 둔 자녀에 대해 부모에게 정신적, 금전적 지원을 해야 함은 물론 노인과 분가해 사는 가족구성원은 자주 집을 찾거나 노인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자녀가 정기적으로 노부모를 찾아 문안하도록 하여 자식의 부모 봉양에 대한 책임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한 것이다.  (노부모 찾아뵙지 않는 자식을 처벌하라? 포스팅 참조)

 

마땅히 국가가 해결해야 할 노인 복지 관련 책임을 개인에게 법적인 의무로 전가한 듯한 중국 정부의 행태는 절대로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당시 중국에서도 이러한 연유 때문에 해당 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봇물을 이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울러 효와 관련한 부모 봉양 문제는 사실상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 따라 맡겨질, 지극히 사적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나서서 직접 개입하는 행태 역시 다소 우스운 일로 비친다.  그만큼 중국 사회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연합뉴스

 

중국과 비교해 우리는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일까?  우리 또한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흡한 노후 복지 정책으로 인해 현재도 그러하지만 앞으로 다수의 어르신들이 불우한 노년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거리마다 즐비한 폐지 줍는 노인들의 모습, 결코 남의 일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OECD의 노인빈곤율 1위와 노인자살률 1위는 우리의 고단한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잣대다. 

 

무엇보다 지극히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영역이 돼야 할 효와 불효에 관한 사안이 이렇듯 법의 잣대에 의해 맡겨진 채 다뤄져야 하는 처지가 너무도 개탄스럽다.  돈 앞에선 형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마저 아무 짝에도 쓸모없도록 만들기 일쑤였던 일부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이란 몹쓸 관행이 이런 상황에서 오버랩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는 효 내지 불효 여부를 법원에서 판가름해야 할 상황이 지금보다 잦아질 테니, 어쩌면 그에 관한 구체적인 매뉴얼 따위가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씁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물론 현행 법의 허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어르신들이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될 노릇이니 이에 대한 정비는 마땅히 이뤄져야겠지만, 무엇보다 이번 불효자식 방지법 발의를 통해 점차 좋지 않은 뱡향으로 변모해 가는 우리 사회에, 개인들의 윤리적 책임의식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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