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노부모 찾아뵙지 않는 자식을 처벌하라?

새 날 2013. 7. 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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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시행된 중국의 개정 노인권익보장법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이 법에 따르면 "60세 이상 부모를 둔 자녀에 대해 부모에게 정신적, 금전적 지원을 해야 함은 물론 노인과 분가해 사는 가족구성원은 자주 집을 찾거나 노인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자녀가 정기적으로 노부모를 찾아 문안하도록 하여 자식의 부모 봉양에 대한 책임을 법제화한 것이다.

 

중국, 부모 봉양 법제화 "노인권익보장법" 개정

 

최근 인구 고령화에 급가속이 붙은 중국애선 생활능력이 없는 노인이 2010년 3300만명을 넘어섰고, 오는 2015년이면 4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법 개정은 노인들의 생활 안정을 강화하고 인구 고령화에 따르는 각종 잠재적 사회 문제들을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여진다.

 

ⓒ문화일보

 

그런데 부모 봉양 문제는 효(孝)와 관련한 것으로서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 맡겨질 사안이지 국가가 직접 개입할 여지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  물론 사지 멀쩡한 자식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노부모를 모른 척 하고 있노라면 윤리적 차원에서의 사회적 지탄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지언정 그렇다고 하여 이를 법으로 정하면서까지 국가가 직접 관여하며 나설 일은 분명 아니다.  현재 중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러한 연유 때뮨이다.  부모 봉양이 과연 법으로 규제할 만 한 대상이 되는가에 논란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서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노인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이러한 정책들이 사회 구석구석 소외 지역 없이 윗목 아랫목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돌보며 관리해 나가야 한다.  물론 지역사회나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서로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갖춰가며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등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후부터는 사실상 개인들의 몫이다.  부모를 찾아뵙는 횟수까지 국가가 나서 직접 통제할 사안은 분명 아니다.  한때 지극히 효를 숭상하던 공자의 나라 중국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하는 생각과 오죽하면 이런 법까지 만들어져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교차한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 우리나라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이제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는 효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중국의 씁쓸한 광경을 보며 우리나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부모 봉양에 대한 우리의 책임 의식,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통계청의 "2012년 사회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족 단독이 부모의 노후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고작 33.2%에 불과했다.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사회나 정부에 대해 의존하려는 심리는 나날이 높아져 가족과 정부의 공동책임이라는 응답이 무려 48.7%에 이른다.

 

 

이와 같은 의식 변화의 흐름은 실질적인 변화로도 나타나고 있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2011년 노후보장패널조사 결과에 따르면 56세 이상 가구원이 있는 가구가 자녀 등으로부터 받는 사적이전소득(개인끼리 주고 받는 용돈 등의 소득)이 2010년 기준 연평균 133만8천원으로 조사됐다.  월평균 11만2천원이라는 뜻이다.  반면 같은 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연금 등 국가가 보장하는 소득인 공적이전소득(정부가 주는 소득)은 연간 258만4천원, 월평균 21만5천원으로 사적이전소득의 2배에 육박한다.  한 마디로 정부가 주는 노인 용돈이 자녀가 주는 그것보다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전통적인 효 사상과 문화의 퇴조가 불러온 대표적인 사회 변화 현상 중 하나로 꼽힌다.

 

 

자녀들의 부모 봉양 기피 현상은 빈곤층 노인 가구의 증가와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  물론 부모 봉양 기피가 단순히 효 사상의 퇴조뿐 아니라 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얽혀있기에 분명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 무려 45%, OECD국가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는 OECD 평균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부모를 봉양하고 자녀들를 교육하느라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노인들, 반면 전통적인 부모 봉양 문화는 점차 옅어져가고 정부의 복지대책은 미흡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빈곤층 노인들, 당장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고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최근 다른 연령층에 비해 60세 이상의 고연령층 취업률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참고로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경제활동 참가율은 30%로서 OECD 평균의 3배에 이르고 있다.  편안한 노후는 고사하고 고달픈 노년을 보내야만 하는 대다수 노인들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은 또 다른 문제점을 연쇄적으로 잉태한다.  자녀들의 부모 봉양 기피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독거노인 가구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독거노인 가구 수의 증가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고독사 문제와도 연결된다.  고독사는 변사 관련 통계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분류가 되지 않아 정확한 통계조차 알 수 없는 실정이지만, 사망자가 대체로 한 해 500명 내지 1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독거노인 인구는 119만명이다.  빈곤층이 45% 정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최소 독거노인의 절반 이상인 50만명 정도가 고독사 위험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부모 봉양 법제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이러한 결과들은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 사회에 보내오는 일종의 경고 신호음으로 들린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효와 같은 전통적 가치가 붕괴되어 사라져가고 있는 이상 노인들의 부양문제를 개인들의 도덕적 윤리적 판단에만 맡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정부와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급속도로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비해 줄어드는 경제활동참여가능인구를 고려해볼 때 정부의 역할에도 분명한 한계는 존재한다.  때문에 최악의 경우 중국과 같은 부모 봉양 법제화 시대가 오지 말란 법 또한 없다.  중국의 노인권익보장법 개정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제법 묵직하다.  

 

한편 이번 법 개정 발효와 동시에 중국내에서는 부모를 대신 방문해 주는 서비스가 등장하였단다.  해당 법의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중국에선 이 법이 적용된 첫 판결이 벌써부터 나와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지난 1일 77세의 노인이 자신을 부양하지 않는 딸 부부를 고소한 사건에 대해 "부부는 적어도 두 달에 한번 노인을 찾아가야 하며, 단오, 중추절, 국경절 같은 공휴일에도 두 차례 이상 의무적으로 방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를 따르지 않을 시 벌금형이나 구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도 판시했다.  이쯤되면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왜 전부 개인에게 떠넘기느냐며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작금의 중국내 논란도 이와 비슷한 상황일 듯싶다.

 

누구나 언젠간 노인이 된다.  이는 나랏님뿐 아니라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도 힘들다고들 하지만 앞으로의 노후는 지금보다 훨씬 고되며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부모 봉양의 미덕은 점차 사라져간다.  중국의 부모 봉양 법제화가 못내 씁쓸하지만, 결코 강 건너 불 구경할 만큼 남 일 같지가 않다.  결국 정부의 좋은 복지대책과 개인들의 윤리적 책임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말은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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