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무기 SW 수출하는 일본, 본격 '보통국가' 되나

새 날 2015. 7. 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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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통국가'를 향한 움직임이 기민하다.  지난해 아베 내각은 공산권과 유엔이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혹은 분쟁 우려가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무기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무기수출 3원칙'을 철폐하고, 수출을 가능케 한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새로이 만들었다.  무기 기술 수출 족쇄를 푼 일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 영국, 호주 등과 잇따라 방위장비 공동개발 관련 협정을 맺었으며, 지난 3월에는 프랑스와도 무기개발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최근 일본기업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강제노역을 한 미국 강제 징용자들을 찾아가 공식 사과한 데 이어 중국과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 전쟁포로에 대해서도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밝힌 데 반해, 우리나라 징용 피해자에 대해선 법적 상황이 앞선 국가들과는 전혀 달라 외면하고 있다는 뜨악한 소식과 함께 11년째 독도 영유권 주장을 기술한 2015년 일본 방위백서 편찬 소식이 전해지며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지만, 이러한 반응에도 눈 하나 꿈쩍 않는 일본은 한층 주도면밀해지고 있다.


23일 일본 정부가 이지스함용 소프트웨어를 미국에 수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일본 NHK발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소식이 여타 보도들에 묻힌 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다지 커다란 이슈로 와닿지 않은 탓일까?  그러나 최근 일본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그리 단순한 사안만은 아닌 듯싶다.  이 소프트웨어는 이지스함 주변에 있는 선박과 항공기 그리고 미사일의 정보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제품으로 알려졌으며, 일본 해상자위대가 미국으로부터 도입할 이지스함의 대공 방어 시스템에 탑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차피 자신들이 사용할 소프트웨어를 수출이란 형식만을 빌린 것뿐이니 크게 문제 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일본이 무기수출 3원칙을 철폐한 뒤 무기나 무기 관련 기술이 수출 대상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이거늘. 이번엔 비록 소프트웨어에 그쳤지만 조만간 하드웨어까지 넘나들며 무기류의 수출이 성사되는 건 결국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탓이다.  따라서 아베정부가 무기 소프트웨어 수출을 성사시킨 건 순전히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해 오던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를 향한 첫 걸음을 뗐다는 데에 의의를 두게 된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등에 업은 채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자위대 해외 파견 그리고 군비 증강 등을 차근차근 준비해 오고 있다.  세계평화와 안정에 적극 기여한다는,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와 군사력을 강화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인 '보통국가론'을 이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아베다.  하지만 우리나라 등 주변국가를 침략한 채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겼던 전범국이라는 멍에 때문에라도,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 없는 작금의 움직임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과 광복 70주년 기념이 되는 해다.  때문에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이는 입장이다.  이번 일본 방위백서 발표에 대해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부 나름으로는 적극 대응에 나선 상황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이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도발을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반복해 온 같은 주장인 데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인 만큼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정도로 새로운 변수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은 우리 정부 탓이다.  이는 우리 영토를 침탈한 행위와 진배없는 망동에 대해 수년간 반복해 왔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정부 나름의 해석인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연합뉴스


그에 반해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저자세엔 아랑곳없이 자신의 갈 길만을 가고 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우려로 인해 우리 정부가 취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해 일찌감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는 압박 카드를 꺼내든 일본이다.  향후 우리 정부가 과연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적어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빌미로 국민의 생명 내지 안전과 맞바꾸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싶다.  2차세계대전 당시 조선인 강제징용시설이었던 메이지시대 산업유산이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당시에도 선제적 대응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기껏해야 일본이 강제노역을 인정한 꼴이라며 절묘한 타협 내지 역전 판정승이라는 웃지 못 할 자평만을 늘어놓기 바빴던 우리 정부다. 

 

한편 127년 역사를 간직한 글로벌 미디어업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일본 미디어기업 닛케이가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거 전범국의 이미지 희석을 위해 세계적 미디어 도구마저 본격 활용하고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일본의 움직임은 한층 교묘해지고 있다.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를 지향하며 무기 관련 소프트웨어 수출을 통해 군사대국화의 본격 첫 걸음을 뗀 일본,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 노력이 자칫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이 저들은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큰 걸음을 옮기고 있다.  과거사에 대해선 털끝만큼의 반성조차 않은 채 본격 '보통국가'로 치닫는 일본이 우리에겐 더없이 두려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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