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외국인에 비친 '한국식 밤샘 문화', 그 빛과 그림자

새 날 2015. 7. 2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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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외 온라인 매체가 한국이 지구 최고인 이유를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Buzz Feed가 제작한 'Reasons Korea Might Be The Best Country On Earth'라는 제목의 해당 영상 속에는 세계최대인 부산의 모 백화점, 인천공항, 밤샘 영업하는 우리의 클럽, PC방, 음식점, 시장 등이 등장하며 이를 통해 한국을 방문해야만 하는 근거들을 요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오색창연한 도심의 화려한 야경과 생기 넘치는 상점 그리고 맛깔스러워 보이는 식당이나 길거리 음식 등은 누가 보아도 흥겹고 마냥 즐거워 보이는 풍경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식 밤샘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다.  뉴욕과 비교하여 진정으로 잠들지 않는 도시는 서울뿐이라며 스스럼없이 엄지를 척하고 올린 채 이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밤새 술 마시며 흥청망청 즐길 수 있는 클럽 문화가 곳곳에 발달해 있고, 싼 가격에 게임마저 실컷 즐길 수 있는 24시간 PC방이 마치 촘촘한 그물망이라도 되는 양 전국 곳곳에 골고루 흩뿌려져있으니 그들에겐 이러한 요소들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외국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늘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터라 이렇듯 호감 일색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무척 낯설지만, 왠지 반갑게 다가온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우리의 문화, 특히 밤샘 문화를 동경하는 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외국에 나가 살다 온 이들의 일성은 한결 같다.  즉 외국은, 심지어 선진국들조차 우리처럼 밤샘 문화가 발달해 있지도 않은 데다 밤 늦은 시각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만한 곳이 흔치 않단다.  때문에 이들 역시 환하고 늘 흥청거리며 안전하기까지 한 한국의 밤이 유독 좋다는 반응 일색이다. 



이 같은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줄기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치안이 외국의 그것에 비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방증일 테고, 다른 하나는 인구 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탓이기도 할 테다.  해만 넘어가면 무서워 밤길을 나다닐 수 없다고 하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밤은 그야말로 천국에 가깝다.  우린 복 받은 셈이다.  아마도 외국인들의 눈엔 이러한 현실이 가장 독특해 보였고, 자신들이 평소 누릴 수 없는 환경이기에 유독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위 사실들과는 별개로, 그들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엉뚱한(?) 이유가 없으리란 법 역시 없지만 말이다.

 

버즈피드 영상 캡쳐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들이 이렇듯 모처럼 우리 한국을 칭찬하고, 우리의 문화에 대해 엄지를 척하고 올리며 치켜세우기 바쁜데, 신기하게도 정작 이를 접한 우리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씁쓸함 일색 아닌가.  이러한 현상은 외국인들이 우리의 밤샘 문화 이면에 가려진 냉혹한 현실을 알지 못한 채 그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흥겨움 따위에만 도취되었다고 생각한 때문이라 짐작된다.  마치 아이돌 등 유명 스타들의 화려함에 가려진 그들만의 말 못 할 어려움을 대중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듯 말이다.

 

우리의 밤샘 문화가 발달하게 된 이면엔 크게 두 개의 피할 수 없는 고달픈 현실이 응축돼 있다.  우선 낮과 밤이 뒤바뀐 힘든 생활을 하면서까지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서민들의 절박한 삶이 그 안에 배어있고, 다른 하나는 OECD 2위에 달할 정도로 근무시간이 많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마치고 하룻동안의 고단함과 시름을, 앞서 언급한 이들이 차려놓은 판 위에서 씻어내리는, 일종의 회포를 푸는 일이라 말할 수 있겠다.  즉 판을 벌여놓은 이들이나 그 판 위에서 노니는 이들 모두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밤샘 문화의 판을 벌여놓은 이들은 그러고 싶어 그런 게 아니라 멀쩡히 직장을 다니다가도 속절없이 내쫓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뛰어든 경우가 다반사인 데다, 그도 아니면 요즘 사회 문제로 떠오른 청년 일자리 부족 따위로 애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막바로 생계 전선에 뛰어든 이들이 태반일 테고, 또한 그 밑에서 최저생계비 6,030원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입에 겨우 풀칠하는 젊은 청춘들이 모여 작금의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결국 우리의 화려한 밤샘 문화는 을과 또 다른 을에 의해 어렵사리 일궈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수많은 눈물이 모여 바로 외국인에겐 화려함이나 흥청망청 따위로 인식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식 밤샘 문화를 지탱해 오고 있다.  누군들 가족과 오붓한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 어느 세대에게조차 맘 편히 살 수 없는 척박한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는 자체가 일종의 판타지쯤으로 받아들여진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고단한 현실에 의해 만들어진 밤샘 문화를 판타지로 받아들이며 이를 즐기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이러한 밤샘 문화보다 단순한 저녁이 있는 삶 따위에 대한 판타지를 그리며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는 셈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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