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셀프디스' 나선 야당, 이미지 변신 성공하려면

새 날 2015. 7. 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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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야당인 민주당과 우리나라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러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현재 두 당 앞에 놓인 정치 지형이 상당 부분 닮아 있는 탓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997년 대선을 통해 정권 창출에 성공한 이래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하며 집권당의 지위를 잃은 바 있고, 이후 치러진 대부분의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하며 10% 내지 20%대의 지지부진한 지지세를 등에 업은 채 어렵사리 제1야당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 민주당이 처한 상황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2009년 일본 집권당의 지위에 오른 뒤 2012년 총선에서 참패, 자민당에게 정권을 내주며 야당으로 전락한 이래 고작 10%대의 지지율로 힘겹게 버텨 오는 중이다.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 하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며, 제1야당으로서의 면이 제대로 서지 않는 점은 우리나 일본이나 완전히 판박이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먼저 당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의원을 필두로 셀프디스 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당원 모두가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금 국민 마음을 사로잡기 위함이란다.  문재인 대표는 그동안 리더십이 약하다거나 카리스마가 없으며 아마추어 같다는 평이 유독 많았는데, 이에 대해 "카리스마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으며, 호남 소외론과 호남 신당을 언급하며 당내 갈등을 더욱 부추겼던 박지원 의원은 "호남호남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매주 두어 명씩 바통을 이어가며 100명 가량이 이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두고 볼 일이다.  '셀프디스'란 스스로의 잘못이나 치부를 드러내는 자아비판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내탓이오'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통렬하게 반성하는 행위로 볼 수 있겠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정치인 하면 목에 힘 주기 바빠왔던 터라 그들에게 있어 자아비판 행위를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다.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법한 대목이다.  어쨌거나 혁신을 내세워 온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통해 당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우리의 야당이 '셀프디스'라는 흥미로운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사이 일본의 민주당 역시 그보다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들고 나와 관심을 촉발시킨다.  민주당은 일본 내에서 '국정 지방선거 후보자 공모 캠페인'을 시작하였는데, 이에 사용된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다 못해 무척 강렬하게 다가온다.  ‘반골의 전문가에게’라는 포스터의 제목부터 사뭇 파격적이다.  그 아래 적힌 세세한 조건들 역시 만만찮다.  "휴일이 없어진다" "비판에 시달린다" "몸은 고되다" "수입은 줄어든다" "당선 보장은 없다" "게다가 민주당이다” 

 

ⓒ세계일보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문구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들만 나열해 놓은 느낌 아닌가?  어느 누가 스스로를 이러한 방식으로 낮춰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중에서도 특히 '게다가 민주당이다'란 문구가 가장 이채롭게 다가온다.  스스로의 곤궁한 처지를 가장 극적이며 처절하게 묘사한, 말그대로 셀프 학대로 와닿는 탓이다.  10%대에 머무르고 있는 지지부진한 지지율이 현재 자신들의 위치를 말해주듯, 이로 인해 선거 후보자 모집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자학적 메시지를 통해 젊은 층에 강렬한 인상과 함께 충격파를 던져 주고자 하는 역발상으로 다가온다.  무척 신선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특히 정치인이나 정당에 있어 이미지는 그 어떤 영역보다 중요하다.  표를 먹고 사는 탓이다.  유권자들의 잠재의식 속에 아로새겨진 이미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와닿느냐에 따라 향후 선거에서 표심의 향방을 결정지을 공산이 크다.  정치인이나 각 정당마다 좋은 이미지를 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일 테다. 

 

그런데 일본 민주당의 자학적 표현이라는 역발상적 기법을 접하고 보니 솔직히 우리 야당의 셀프디스 캠페인은 지극히 형식적인 제스처로 다가온다.  이를 직접 기획한 분이나 야당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이로부터는 일본 민주당이 선보인 것과 같은 절박함 따위가 전혀 묻어나오질 않는다.  가뜩이나 신뢰를 잃은 야당이거늘, 이러한 행태로 국민의 마음을 되돌린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할까?  판을 완전히 뒤집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충격 요법이 절실한 상황 아니었던가?  당장 이 상태로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나 있을까?

 

비록 자학적이라는 비판을 들을지언정, 일본의 민주당과 같은 도발적이며 발칙한 발상이 때로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지리멸렬하기만 한 우리 야당엔 더더욱 그렇지 않나?  야성을 잃은 야당이라면 이미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과 진배없잖은가.  그동안 혁신을 하겠노라며 부르짖어 오면서도 내홍으로 인해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감만 잔뜩 안겨 주었던 제1야당 아니었나?  때문에 정작 우리 야당에 절실한 건 일본 민주당이 선보인 반골 기질과 파격 따위가 아닐까?

 

이미지 정치라는 게 반드시 나쁘게만 바라볼 사안은 분명 아닌 것 같다.  그와 따로 노는 현실이 그동안 우리로 하여금 늘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끔 만들었을 뿐이니 말이다.  이미지 쇄신을 통한 야당의 변화 노력을 향해 쇼라며 폄훼하거나 극구 평가 절하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아니 실은 지지자들조차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보다 솔직한 속내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제1야당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방증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셀프디스 속에 베어 있는 현실의 절박함은 여전히 일본 민주당이 선보인 자학적 메시지의 그것에 비해 훨씬 미약하다.  결국 절박함만이 작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제가 틀림없다면, 이미지 변신이 쇼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말뿐이 아닌 처절한 자기 반성과 뼈를 깎는 쇄신 노력을 통해 절박함을 실천으로 승화시켜야 하는데, 비록 이에 대한 정답과는 거리차가 제법 있을지 몰라도, 어쨌거나 일본 민주당이 선보인 과감함 내지 역발상 따위가 우리 야당에도 더 없이 요구된다 하겠다.  아니 실은 그 이상의 파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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