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픽셀> 기발한 상상력의 끝판왕

새 날 2015. 7. 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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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오락실에서 즐기던 아케이드 게임 내용의 다수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으로부터 방어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류의 초창기 작품이랄 수 있는 '인베이더'나 그로부터 한층 진화한, 한때 스타크래프트에 버금갈 만큼 엄청난 인기와 전성기를 누렸던 '갤러그'가 바로 그러하다.  만약 이러한 게임속 유닛들이 그 형태 그대로 지구를 침공해 온다면 어떨까?  영화 '픽셀'은 바로 이러한 발칙한 상상으로부터 비롯됐다.

 

오래된 브라운관 TV에서 뛰쳐나온 픽셀들이 모여 아케이드 게임 속 다채로운 유닛의 형상을 이루더니 어느새 도심 하늘 위에 나타나 닥치는 대로 주변 사물들과 충돌하며 그마저도 모두 픽셀로 만들어버린다.  이윽고 게임 유닛들의 대장격쯤 돼보이는 동킹콩이 등장하고 그가 투척해놓은 시한폭탄이 터지면서 지구 전체가 픽셀화되더니 구형 모양마저 도트화된다.  - 영화 '픽셀'의 모티브가 된 'Pixels'


1982년 아케이드 게임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샘 브레너는 단짝인 윌 쿠퍼와 함께 동네 오락실을 전전하며 게임 삼매경에 빠져든다.  샘 브레너의 게임 실력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출중하다.  그가 게임을 할 때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 와 구경할 정도로 신기에 가까운 실력이다.  이렇듯 그의 게임 실력이 탁월한 이유는 유닛의 움직임과 패턴이 읽히는 덕분이란다.  어느날 세계게임대회가 개최되고, 게임 대전 내용은 모두 비디오에 담겨 혹시나 존재할지도 모를 우주인과의 접촉에 대비해 우주선의 캡슐에 넣어진 채 우주로 쏘아올려지게 된다.  샘 브레너 역시 이번 대회에 참가하여 불꽃싸다구(피터 딘클리지)라 불리는 게임 덕후와 멋진 경연을 펼친 끝에 준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대략 30년이 흐른 뒤, 놀랍게도 윌 쿠퍼(케빈 제임스)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어 있었고, 샘 브레너(아담 샌들러)는 게임 덕후의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전자제품 설치와 수리하는 일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둘은 자주 만나 여전히 친분을 과시하는 사이다.  그러던 어느날 팩맨, 갤러그, 동키콩, 인베이더 등 게임속 유닛의 형상을 한 외계인이 괌에 나타나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백악관엔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바닥인 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인해 또 다시 위기 국면에 처하게 된다.  외계인들의 메시지에 따르면 1982년 게임대회를 담은 캡슐이 아케이드 게임속 내용처럼 자신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져 그 형상 그대로 지구를 침공한 것이란다.  팩맨이 도심 한복판에 나타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등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해 지구촌은 온통 난리도 아니다.  이에 대통령은 게임덕후이자 친구인 브레너를 백악관으로 끌어들여 자문을 구한 뒤 과거 덕후들을 모두 모아 외계인에 맞서기로 하는데...

 

 

 

 

 

영화 '픽셀'은 유튜브에 올려진 원작의 판권을 구입, 장편으로 각색하여 탄생한 영화다.  원작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매우 짧은 단편에 불과하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압권이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원작의 그 톡톡 튀는 재기 발랄한 느낌을 원형 그대로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탓인지 지나치게 다양하고 방대한 물량 공세를 퍼붓다보니 게임 유닛 중 '팩맨', '레이디 리사' 등 일부를 제외하고 무엇 하나 특색있게 다가오는 녀석이 없었다는 점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 아닐까 싶다.  분명 원작에서 등장했던 신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중간중간 엿보이긴 하지만, 왠지 그에 비해 어수선한 데다 또렷함마저 덜 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원작 단편 'Pixels'

 

실은 나 역시 어릴적 부모님 몰래 오락실에 가서 50원 내지 100원 짜리 아케이드 게임을 줄창 즐겼던 세대인지라 영화에서 등장하는 갤럭시나 인베이더, 지네, 개구리 그리고 갤러그, 테트리스 따위에 너무도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요즘의 디스플레이 출력장치에 비해 하나의 픽셀이 유난히 큰 탓에 당시의 게임 속 유닛의 선은 예리하지 못하고 온통 울퉁불퉁한 도트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글씨라고 하여 예외일까?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신기하게도 이러한 엉성함이 오히려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예고편 덕분이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은 내게 특별히 눈에 들어올 만한 소재거리가 아니었으나 그 외계인의 존재가 다름아닌 예전 오락실에서 즐기던 아케이드 게임 유닛이라니, 그 발칙함과 독특함에 끌려 발길이 절로 상영관으로 향하게 된 셈이다.  풀HD에 울트라 풀HD까지 등장하는 첨단 시대에 도트 하나의 크기가 너무도 뚜렷한 사각형 형태로 눈에 들어올 만큼 엉성했던 예전 오락실에서의 게임 유닛들이 지구를 침공한 채 주변의 것들을 닥치는 대로 해치우며 모두 픽셀화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참신함과 기발함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영화적 상상력과 그로부터 구현될 CG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발현되어야 참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함이라곤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샘 브레너는 작업복을 입은 채 백악관을 드나들며 양복과 제복을 쫙 빼입고 근엄하게 앉아있는 이들의 엄숙주의를 신랄하게 비틀어댄다.  이러한 덕후들의 자유분방함에 모두가 무장해제될 정도다.  근육이 잘 다듬어진 데다 살벌하기까지 한 네이비실 특수 대원들을 게임 덕후들이 우스운 꼴로 만들어 버릴 만큼 영화 내용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다른 한편으론 대리만족감마저 느껴지게 하는 상황이니, 이를 관람하는 우리 역시 정신줄을 놓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이러한 분위기를 마냥 즐기면 될 듯싶다. 

 

끝으로 영화가 모두 끝났다고 하여 그냥 일어서면 분명 후회하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의 전체 흐름을 아케이드 게임 형태로 조망해볼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실사와는 분명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픽셀'은 기발한 창의력이 영화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우린 진지함과 엄숙함 따위 모두 내려놓은 채 장난기 가득한 영화 속으로 빠져들면 그만이다.  적어도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만큼이라도 세상 시름으로부터 벗어나보자.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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