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소수의견> 현실 같아서 섬뜩한,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

새 날 2015. 6. 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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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아현동 재개발 지역 강제 철거 현장, 중무장한 경찰들이 한 건물을 에워싸고 있고, 그 건물 옥상에서는 연신 화염병이 투척되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지휘본부의 진압 지시가 떨어졌다.  경찰 한 무리가 건물에 투입된다.  현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안타깝게도 인명 사고마저 발생했다.  건물 옥상에 남아 끝까지 사투를 벌이던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아들과 경찰 한 명이 사망한 것이다.

 

경찰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박재호는 결국 구속되고 만다.  그에게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국선 2년차에 접어든 새내기이자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윤진원(윤계상) 변호사가 배정됐다.  그저 그런 사건이라 생각한 탓인지 마냥 심드렁하기만 한 윤진원, 어느날 해당 사건을 취재하던 공옥경(김옥빈) 기자를 만나게 된 뒤 사건의 실체에 대해 일부나마 알게 되고, 이번 사건이 무언가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직감한다. 

 

 

탕수육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짜장면을 통해 돈을 벌면 된다는 신조를 가진 윤진원의 선배 장대석(유해진) 변호사는 자신의 신조처럼 간통 따위의 사건 수임으로 먹고 사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속물적인 인물이다.  윤진원은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터라 장대석을 동업자로 이번 사건에 끌어들이기로 한다.  박재호 아들의 사망은 경찰 작전 중 벌어진 불상사로 마땅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건임을 내세워 국가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기 위한 100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키로 한 것이다.  아울러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국민참여재판 형식을 채택했다.  이후 치열한 법정 공방이 펼쳐지는데..

 

영화속 사건은 허구이며, 인물들 또한 모두 가상이라는 자막이 시작과 동시에 스크린 위에 조용히 흐른다.  하지만 우린 특정한 한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다름아닌 용산참사 사건이다.  수년이 흘러도 여전히 그로 인한 고통과 아픔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탓이다.  하지만 감독은 시종일관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속 인물들의 면면을 놓고 봐도 그렇다. 

 

 

장대석이나 윤진원은 그저 변호사로서 소임을 다할 뿐이며, 자신들의 입지를 한 단계 높여보고자 해당 사건에 뛰어들었을 따름이다.  즉 애초 정의감이나 사명감 따위를 그들에게서 찾아선 안 될 노릇이다.  탕수육 대신 짜장면을 택한 장대석의 속물적인 근성은 언뜻 영화 '변호인'에서의 초창기 송변을 연상시킨다.  특정 사안에 목숨 걸듯 뛰어들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일견 비슷하다.  하지만 인물의 성향과 일에 매달리게 만든 원동력은 판이하다.  즉 송변은 국가기관의 인권 말살 실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내재돼 있던 정의감이 폭발하며 본격 인권 변호사로 전환하게 되지만, 장대석이나 윤진원은 사회 정의감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입신영달을 위한 변호사로서의 책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을 비칠 뿐이다.  이 영화가 작금의 객관성을 유지 가능하게 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 아닐까 싶다. 

 

박재호의 아들은 박재호의 주장처럼 실제로 용역깡패가 아닌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는 공권력이 무고한 시민을 죽인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하지만 국가는 철저하게 이를 감춘 뒤, 반대로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여론을 몰아 아들의 죽음을 애써 축소하려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 정황까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며, 국가가 해당 사건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내비친다.  여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충격 상쇄 아이템을 꺼내드는 모습도 읽힌다.  즉 박재호 아들이 죽은 사건에 대한 수사 상황 보도는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때마침 터진 연쇄살인범 관련 보도를 대폭 늘리는 행태가 바로 그의 사례다. 

 

 

선후배 사이로 촘촘하게 얽힌 법조인들 간 끈끈한 관계는 사건 하나를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일 따위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의 검찰 수뇌부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기름칠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는다.  국가 공권력의 주도면밀한 움직임은 그 어떠한 조작도 서슴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주 사소한 빌미조차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일 또한 얼마든 실현 가능함을 내비친다.  비록 허구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일어날 법한 사안들이어서 마치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느낌이라 섬뜩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의 실체는 한 경찰에 의해 박재호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를 목격한 박재호가 해당 경찰을 다시 죽인, 비극적인 결말이다.  박재호는 과연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조화가 짜임새있게 다가오며, 진퇴 공방을 일삼는 법정 싸움 또한 손에 땀을 쥐도록 만든다.  윤계상의 연기력은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 탓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윤진원이라는 캐릭터만큼은 적절한 선택이었던 듯싶다.  유해진의 구수한 입담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온통 기레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짜 기자상을 보여 준 김옥빈의 연기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으며, 국가에 봉사했노라며 마지막까지 음흉한 웃음을 흘리던 악덕 검사 홍재덕 역을 맡았던 김의성의 연기력은 유달리 돋보였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참여재판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은 검찰 측 요원 유인하(오연아)의 자분자분한 설명 연기였으며, 원로배우 박규채 씨가 등장하여 악덕검사 홍재덕에게 일갈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통쾌하기까지 했다.

 

국가를 위해 진실을 감추려는 조직적인 행위들을 홍재덕 검사는 국가를 위한 희생이자 봉사라 말한다.  물론 그러한 희생과 봉사의 반대급부로 애꿎은 시민들의 인권은 바닥으로 내쳐지기 일쑤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까지 차분함과 객관성을 잃지 않고 있다.  한쪽으로의 쏠림을 경계하는 눈치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이 영화만의 미덕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다.  마침내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의 의견을 모아 판사(권해효)에 의한 최종 판결이 내려지게 되고, 이윽고 스크린에선 사건의 전모가 있는 그대로의 날 것 상태로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결국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둔 셈이다. 

 

 

감독  김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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