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4.29 재보선 결과의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새 날 2015. 4. 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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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궐선거 결과, 전체 4석 중 새누리당이 3석 그리고 무소속이 1석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의 압승이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비록 4석이라는 작은 규모의 선거인 데다 대충 예견됐던 결과이긴 하지만, 제1야당의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당장 야당의 무능에 대한 성토와 문재인 대표 책임론이 비등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대형 이슈는 야당에게 있어 둘도 없이 좋은 기회로 여겨지던 터인데, 이러한 기회마저 살리지 못하고 죽 쑤어 개를 준 판국이니, 야권 지지자들의 원성이 높아질 법도 하다.  혹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28일 대국민 메시지가 이번 선거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마치 2006년 지방선거 운동 당시 면도칼 피습을 당해 병상에 누워 있다 선거 전날 "대전은요?"라는 한 마디로 일약 선거의 여왕으로 떠올랐던 박근혜 효과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통했을 것이라 보는 관점이다.

 

ⓒKBS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 선거를 의식한 발언임이 분명하고, 일정 부분 판세에 영향을 미치긴 했겠으나 그다지 결정적이진 않았으리라 본다.  혹여 박 대통령의 선거 전날 대국민 메시지가 없었다고 한들 오늘날의 선거 결과와 견주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관측되는 탓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을까?  야권 분열이 결정적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광주 서구을과 서울 관악을의 경우를 보자면 결정적인 게 분명 맞다.  그런데 이는 야당으로써도 어쩔 수 없는, 야권 지형 변화의 한 축이라는 외적인 측면으로 간주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 전략 부재를 그 이유로 드는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이 정권심판론보다는 경제 살리기라는 실리를 택했으리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솔직히 표현하자면 야당이 어떠한 전략을 내세운다 해도 현재의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탓이다.  여당에게 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성완종 리스트라는 초대형 이슈가 터져도 유권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거나 냉담했다.  선거 결과가 이를 대변한다.  제아무리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라 해도 이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이슈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야 정상일 법한데도 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랏일을 하거나 경제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부정부패에 대해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며 관용을 베푸는 우리 사회의 관행이 여전함을 뜻한다.  물론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부조리와 부패에 둔감하게 된 건 순전히 차떼기 형태의 천문학적인 불법 자금을 수수하며 부정부패를 밥먹듯 일삼았던 현재의 새누리당 탓이 크다.  그들이 지은 원죄가 오히려 그들에게 이득으로 작용하는, 기묘하거나 아이러니한 일이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에 의해 형성된 잠재의식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관행이 아직도 국민들 머릿속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상황으로 읽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만큼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문에 국정에 공백이 생기거나 국정 동력이 상실돼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경제를 살리는 데 있어 이 정도의 부정부패 정도는 대충 덮고가자는 취지의 발언을 틈만 나면 반복했다.  같은 당의 김진태 의원 역시 지난 22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조선 시대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간통도 하고 무슨 참 온갖 부정청탁에 뇌물에 이런 일이 많았다는 건데, 그래도 세종대왕이 이 분을 다 감싸고 해서 명재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여당 내에서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러한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제아무리 성완종 리스트와 같은 굵직한 스캔들이 발생한다 한들 우리 유권자는 눈 하나 꿈쩍 않은 채 같은 당의 또 다른 인물에게 표를 던져 주기 일쑤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예견됐듯 정국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을 공산이 크다.  일단 야당의 목소리엔 힘이 빠질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여당과 정부의 추진 동력은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정치 개혁은 더욱 요원해진 느낌이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불거진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정치 개혁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변질된 정치 개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즉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밝힌 것처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계기가 된 사면으로 초점이 옮겨붙으며 본질과는 상이한 형태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논지를 흐리다 결국 흐지부지될 공산이 커졌다.  이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이번 4.29 재보선에서 보여 준, 부정부패에 여전히 둔감해 보이는 우리 유권자들의 한 표 행사에 의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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