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재보선 결과, '성완종 리스트' 면죄부가 돼선 안 된다

새 날 2015. 5. 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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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 결과의 후폭풍이 여러 형태의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  야당의 경우 잠재돼 있던 계파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더니 문재인 대표 흔들기에 나서는 등 심한 내홍을 겪고 있으며, 야권 지지자들마저 서로 파가 갈린 채 그 어느 때보다 선거 패배 뒤의 개운치 못한 여운을 씁쓸함으로 달래고 있는 모양새다.  당장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대한 야권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로 읽힌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최대 개혁 과제 중 하나였던 공무원연금 개혁이 최종 타결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에도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여야가 예상보다 빠른 결론을 도출시킨 탓이다.  선거에서 압승한 새누리당의 야당 압박 전술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세월호와 관련해서도 정부 여당이 자신들의 방침을 그대로 밀어붙일 기세다.  정부가 마련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에 대해 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노라며 못박고 나섰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이 지난달 30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다음 주 열리는 국무회의에 이를 상정할 방침이란다.  물론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발은 거셌다.  그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노동절이었던 지난 1일 안국동 사거리에서 세월호 문화제를 개최한 뒤 도로를 점거한 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시 대회 참가자와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고, 도심엔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난무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다음날까지 철야농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4.29 재보선 이후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움직임이다.  물론 우려했던 대로다.  4.29 재보선이 끝나자 검찰의 수사는 오히려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성완종 전 회장이 생전 어딘가에 맡겼을 것으로 추정돼 온 금품로비 장부를 검찰이 1일 현재까지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선거가 끝난 뒤 공교롭게도 정치권의 공방이 주춤한 데다 검찰마저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듯한 모양새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이번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은 누가 뭐라 해도 명단에 오른 정권 실세 8명에 대한 수사다.  그 중 한 명인 홍준표 경남지사의 움직임은 선거 전과 후 사뭇 다르게 와닿는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두문불출로 일관해 오더니, 선거가 끝난 뒤인 1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나 녹취록은 형사소송법상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역공을 펴는 듯한 모습을 취한 탓이다.  물론 검찰 소환을 앞둔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 전과 후, 그의 태도가 이렇듯 돌변한 상황을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이번 재보선 결과는 너무도 극적이다.  뿐만 아니다.  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여 청와대 업무보고를 마친 이병기 비서실장으로부터도 비슷한 면모를 엿볼 수가 있다.  그는 “조사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는 사퇴를 못하겠으며, 혐의가 나오면 그때 그만둘 용의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가 더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박대통령이 선거 전날인 28일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인 대통령 자신과 측근의 새누리당 경선 및 대선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한 언급은 일절 않은 채 '정치 개혁'이라는 두루뭉술 화법을 구사하며 오히려 이번 사건의 계기가 이전 정권의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때문이라고 본질을 호도했던 그 상황과 궤를 함께하는 양상이다.  비서실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그의 발언이고, 향후 해당 사건의 향방이 예측되는 터라 솔직히 우려스러움을 감추기가 어렵다.

 

새누리당 역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특별사면으로 희석한 덕분에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김무성 대표는 4.29 재보선 이후 자못 자중하는 모양새지만, 실은 승리자의 여유를 한껏 만끽하고 있는 와중이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 지역구 세 곳에서의 승리를 마치 국민 전체의 뜻인 양 착각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권 실세 8명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사실일 것'이라는 의견이 89.3%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거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이번 사건을 유명무실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4.29 재보선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향방을 바꿀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건 선거 전부터 누누이 강조해 왔던 사실이다.  이는 여당의 압승으로 인해 검찰의 정치 실세에 대한 수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선거의 야당 전패는 너무도 뼈아프다.  그렇다고 하여 '정치 개혁'이라는 무척 뻔하거나 두루뭉술한 명제를 내세워 성완종 게이트의 본질을 호도하고 흐지부지하는 일은 절대로 벌어져선 안 된다.  지역 유권자들이 여당에 압승을 선사한 건 부정부패를 묵인한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며, 국민이 현 정권에 성완종 사건의 면죄부를 준 건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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