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 대통령 대국민 메시지의 부정 및 긍정효과

새 날 2015. 4. 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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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회복이 더뎌 안정을 취하면서 조금 더 상태를 지켜 봐야 하기에 당장 공식 일정을 잡기도 곤란한 처지란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은 28일 이례적으로 성완종 리스트 파문 관련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았다.  물론 링거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대통령 대신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발표하는 형식을 갖췄다.  메시지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완구 총리 사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여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다.  진실 규명을 위해서라면 특검을 수용할 의사가 있으며,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이 결국 이번 파문의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니,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진실을 밝혀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

 

ⓒJTBC 방송화면 캡쳐

 

굵직한 현안이 터질 때마다 대통령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하거나 책임에 대해선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마치 남의 일인 양 남탓으로만 일관해 왔던 예의 그 화법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활용됐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본질, 즉 대통령 자신과 측근의 과거 당내 경선 및 대선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한 언급은 일절 않은 채 두루뭉술한 화법을 통해 일반론적인 시각만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파문이 발생하게 된 궁극적인 원인을 성완종 씨의 사면으로 지목하더니, 어느덧 사건의 초점을 과거 정부의 사면 문제로 옮기려 시도했다는 사실이디. 

 

당장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 저해의 우려가 있다는 야권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의 반발을 또 다른 정쟁 유발이라며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발표가 있던 다음날은 4.29 재보선이 치러지는 중요한 일정이 계획된 탓이다.  이번 선거의 규모는 비록 작지만, 선거 결과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전대미문의 대형 이슈 향방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정치적 구도이기에, 선거의 무게감이 남다른 상황이며 때문에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파급력을 낳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이 이러한 상황을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의심을 불러올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더구나 선거 전날, 홍보수석의 대독을 통해, 게다가 본질을 흐리려는 의혹 투성이의 메시지라면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대통령의 적절치 못한 메시지가 오히려 정쟁의 화근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선거 결과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기화로 정치 개혁이란 화두를 꺼내들었지만, 대통령 스스로가 개혁 대상이란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고 있다.  어떡하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 술수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대통령마저 그에 힘을 실어주며 구태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대국민 메시지는 그의 한 도구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 개혁은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경향신문

 

물론 그렇다고 하여 대통령의 메시지가 반드시 부정적인 효과만 낳고 있는 건 아니다.  대통령이 성완종 씨 사면 얘기를 꺼내든 건 본질을 회피하려는 의중이 가장 커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면 문제에 관련해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떳떳하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아니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특별사면권의 엄격한 제한을 강조했으며 몸소 실천해 오던 터다.  집권 이래 단 한 차례만 행사하였으며, 얼마전 최태원 SK회장 등에 대한 특별사면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여론에 밀려 물거품된 바 있다.

 

불법 정치 자금 의혹에 대해선 숨기고 싶으나 적어도 특별사면 행사와 관련해서는 과거의 정부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고 자신하는 모양새다.  즉 박 대통령이 본질은 놔둔 채 성 전 회장 사면을 정조준하고 나선 데는 물타기라는 정치적 의도 외에 사면 문제만큼은 현 정부가 깨끗하다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탓이다.  대통령이 가장 떳떳하고 자신있어 마지 않는 영역 중 하나가 이 부분일 테니 그동안 숱하게 이뤄졌던 재벌 총수들에 대한 특별사면만큼은 박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는 대통령 대국민 메시지의 수많은 부정효과들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군계일학과도 같은 유일한 긍정효과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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