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추모 집회, 불통과 정치 실종이 낳은 살풍경

새 날 2015. 4. 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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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세종로 일대에서 개최된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란 표현이 가장 정확할 듯싶습니다.  애초 발단은 이렇습니다.  경찰이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의 행진을 원천 봉쇄한다며 대규모 경찰 인력과 차벽, 그리고 경찰버스를 총동원하여 광화문 사거리와 청계천 일대를 다중 차단하고 나섰습니다.  

 

ⓒ미디어스

 

광우병 사태 당시 선보였던 '명박산성'에 이은 이른바 '근혜산성'이 등장한 셈입니다.  이는 '명박산성'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이었으며, 물샐 틈 없을 만큼 견고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조차 조문은 아예 불가능했으며, 시민들 역시 난데없는 큰 불편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후 경찰의 차단벽을 사이에 두고 치르게 될 시민과 경찰 간의 공방 및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결과를 사전에 예측 못했다면 이는 경찰의 무능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셈이자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할 것입니다.  때문에 이번 사태를 빌미로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시위 운운 논란은 결코 우연이 아닌 상황으로 읽힙니다.  이른바 댓글 부대가 총동원되기라도 한 듯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기사엔 유가족과 대회 참가자들을 비아냥대거나 폄훼하는 댓글로 온통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찰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모두가 짐작하는 바로 그 현상(여론몰이)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16일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부터 비롯됐음직한 경찰과 유가족 및 대회 참가자 간의 충돌은 주말인 18일에도 계속됐습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과 물대포를 다량으로 살포하며 대회 참가자들의 해산을 유도하고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측 모두로부터 부상자가 속출하였습니다.  서로를 향한 강한 증오심이 이러한 결과를 빚고 만 것입니다.  물론 분노와 증오심의 표출 향방이 잘못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100여명을 연행해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폭력 행위자를 전원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였습니다.  경찰청은 19일 브리핑을 열고 이번 집회를 '4.18 불법 폭력 집회'로 지칭한 채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작 시민들의 아프거나 가려운 부분은 잘도 외면하면서 이런 대목에선 놀라울 정도로 빠르거나 정확하게 대응에 나선 우리의 공권력입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주말 내내 이와 관련한 의견들로 분분했습니다.  현재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다름아닌 불법시위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시각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처지라 해도 지킬 건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팽배합니다.  물론 지극히 옳은 의견입니다.  의도적으로 유가족들을 폄훼하기 위해 나선 세력들의 분탕질 성향의 의견은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제아무리 올바른 일을 한다 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는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먼저 따져 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경찰의 대응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는냐 하는 점입니다.  공권력 역시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경찰병력을 동원해야 하는 건 질서 유지 차원에서라도 온당히 필요한 노릇이겠지만, 굳이 차벽 등으로 세종로 일대를 완전 차단시킬 필요까지 있었느냐에 대해선 의문부호 하나가 붙습니다.  대회 참가와 전혀 관계가 없었던 일반 시민들조차 이로 인한 피해를 하소연할 정도였으니 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가족을 잃은 슬픔에 눈물마저 메마른 이들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대응했어야 하느냐는 식의 감정에 기대어 호소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공권력의 과잉 대응이 오히려 작금의 상황을 더욱 부추기거나 악화시켰다는 대목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적어도 '근혜산성'만 없었더라도 유가족과 대회 참가자들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폭발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경찰이 주장하는 불법시위의 결과물은 결국 경찰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지레 짐작으로 대응한 덕분에 화를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높이 쌓은 산성은 결국 불통의 상징물과도 같습니다.

 

아울러 사회에서 빚어지는 모든 현상들에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가 존재합니다.  경찰의 과잉 대응에 앞서 오늘날 이러한 일이 빚어지게 된 데엔 필시 다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변한 게 없습니다.  요원하기만 한 세월호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 문제는 유가족들로 하여금 눈물샘을 말라버리게 만들었으며 어느덧 지쳐 악다구니만 남은 상태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의 외면 탓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재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의 진상 규명은 무엇보다 선결돼야 할 중요한 문제일 텐데,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정치권과 정부는 이를 애써 외면하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왜 그러한지 대충 짐작되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세월호 1년이 지났음에도 유가족들은 여전히 이번 참사의 해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노컷뉴스

 

행정부 수반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해외 순방을 훌쩍 떠나면서 유가족들의 조문 행렬에 대해 '근혜산성'으로 응수하라고 지시한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랫사람들의 대통령을 향한 지나친 충성심의 발로에서 비롯된 결과물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집권 내내 불통 행보를 보여온 이번 정권은 세월호 앞에서도 한결 같기만 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4.18 불법 폭력 집회'라 지칭한 이번 사태는 현 정권의 불통과 정치 실종이 합작으로 빚어낸 결과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사실 차벽을 만들며 길을 막아서거나 심지어 캡사이신을 발사하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경찰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그저 위로부터의 지시를 따른 게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에 의해 가로 막힌 유가족 및 시민들뿐 아니라 경찰들 역시 모두 같은 피해자에 불과합니다.  불통과 정치 실종이 만들어낸 이러한 살풍경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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