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성완종 리스트, 집권세력에게 '성역없는 수사'란?

새 날 2015. 4. 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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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임하는 집권 여당과 행정부 수반의 태도는 그동안 한결 같았습니다.  적어도 세월호 1주기 전날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을 자청한 채 검찰에 '성역없는 수사'를 주문한 바 있고,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 역시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볼 때 더 이상의 표현력을 발휘하기란 힘들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하지만 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여당 대표와 대통령이 이러한 발언을 하게 된 데엔 모종의 배경이 깔려있었을 것이라 관측되는 상황입니다.  맞습니다.  모두가 예상한 그대로일 것입니다.  즉 발빠른 대응으로 야권 일각으로부터 불거지고 있는 특검 주장 등 정치적 공세와 확산일로의 의혹을 미연에 차단하고, 2012년 대선자금으로까지 튀고 있는 불똥을 잠재우기 위해 정면 돌파해나가겠다는 의중을 비친 것입니다.  

 

ⓒ청와대

 

김무성 대표는 이후에도 입을 뗄 때마다 성역없는 수사를 언급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근래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핵으로 떠오르며 세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완구 총리가 선언한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성역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입니다만, 왜 집권 여당은 물론이거니와 대통령까지 나서서 수 차례 이를 강조하고 있는 걸까요? 

 

아무래도 집권세력이 생각하는 '성역없는 수사'의 의미란 저희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형태인가 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박 대통령의 남미 순방 전후로 벌어지는 일들이 심상치 않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지난 16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비공개 단독 회동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또 다시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하였으며, 그보다 더욱 눈에 띠는 대목은 며칠 전의 사례와 비교해 아주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됐다는 부분일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떠한 조치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검찰에서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직접 특검 수용 시사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7일자 조선일보 단독 기사 캡쳐

 

그런데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7일 아침 조선일보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기사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단독이라 표기되어 있었고요.  "여야인사 14명 '성완종 장부' 나왔다"라는 제하의 기사입니다.  이를 살짝 거들떠 보게 되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을 담은 로비 장부를 검찰 특별수사팀이 확보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장부엔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에게도 금품을 준 내역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수사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이 외에도 성 전 회장 측이 보관해온 로비 관련 자료가 더 나올 수 있어 검찰의 조사 대상에 포함될 정치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합니다.

 

무언가 반전이 예상되는 대목입니다.  이를 놓고 볼 때 김무성 대표나 박근혜 대통령의 12일 '성역없는 수사' 주장과 16일 두 사람의 비공개 회담에서 나온 '성역없는 수사'의 의미가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건 비단 저뿐일까요?  그렇습니다.  본격 물타기의 신호탄으로 읽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인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의 진영이 여당이 됐든 야당이 됐든 그와 상관없이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4.29 보선이라는 굵직한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분명 궁지에 몰렸으리라 짐작되는 집권세력이, 당장의 위기 모면을 위해 또 다시 본질을 흐리려는 꼼수를 끄집어낸 듯해 여간 찜찜한 게 아닙니다.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완구 총리가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도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인데요.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완구 총리의 거취에 대해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밝힌 부분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열흘 동안이나 대통령이 공석인 상황이라 국정 공백이 우려되는 건 분명 맞습니다만, 작금의 상황이라면 식물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총리인 탓에 굳이 자리를 보전시킬 만한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통령의 특검 수용 시사 역시 이로부터 기인한 것 같습니다.  무언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국면 전환에 대한 확신이 섰기에 자신있게 꺼내든 카드임이 분명합니다.  결국 집권세력에게 있어 '성역없는 수사'란 바로 이러한 의미였던 겁니다.  안타깝게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조만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  사회악인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정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그 방식이 구태스러운 꼼수로 일관해선 안 될 노릇입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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