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민안전 다짐대회', 정작 국민안전은 없었다

새 날 2015. 4. 1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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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정부는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의 일환으로 세월호 1주기인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하고, 서울 코엑스에서 제1회 '국민안전 다짐대회'도 개최했다.  대형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과 대비에 철저를 기하고, 유사시 신속히 대응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약속과 다짐을 갖기 위함이 이번 행사의 취지란다.

 

ⓒ참세상

 

한편 국민안전처의 초대를 받은 세월호 유가족 일부 역시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걸로 전해진다.  정부가 주관한 행사이니만큼 대략적인 현장 분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예상보다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국민 안전'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철저하게 관변 행사로 흐른 탓이다.  행사 대부분을 이제 갓 출범한 국민안전처의 정책 홍보에 할애한 부분은 어쩔 수 없다손쳐도, 박인용 장관이 등장할 당시 사회자가 사전에 박수를 쳐달라고 부탁하는 등 참석자들의 박수를 유도한 상황이나, 심지어 군악대의 팡파레까지 울리게 한 대목에선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왜냐면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해 나라 전체가 온통 숙연한 분위기인 데다 세월호 유족을 초대한 행사임에도 기어코 팡파레를 울리거나 박수를 유도해야만 했던 건지 나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의 자연스러운 박수 소리야 어쩔 수 없더라도, 적어도 팡파레나 박수를 유도하는 행위만큼은 자제했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세월호는 여전히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겨있고, 아직 9명의 실종자는 뭍으로 건져올려지지도 못한 상황인데 말이다.  국민안전처는 이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못 느끼겠다는 건가, 아니면 안 느끼는 건가.

 

이러한 정부기관의 행태는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반복돼온 안전 사고의 악습과 결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음에도 사회 안전과 개개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사고는 지속되고 있고, 정부는 여전히 선제적인 대응보다 뒷수습에만 매달려있는 형국인 탓이다.  국민안전처가 내세워온 안전대책 등의 정책은 포장만 요란할 뿐 사고 예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례로 정부가 지난달 30일 심의 확정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엔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이라는 비전과 '안전이 생활화된 국민', '안전이 체질화된 사회', '안전이 우선시되는 국가 정책'이라는 3대 목표 아래 5대 전략 100대 과제가 담겨있다.  이를 기획한 분들껜 무척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화려하면서도 두루뭉술한 표현 일색인 걸 보아 하니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물로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세월호 이후에도 무수히 일어난 안전사고에 대해 정부는, 이미 사고가 벌어진 뒤에야 마지못해 대책을 마련하는 후진적인 행태를 거듭해오고 있다.  물론 사후약방문이라도 잘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문제는 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안전을 위한 정부의 선제적인 대응은 요원하고, 그저 부실한 사후대책만이 봇물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안전 불감증에 단단히 중독된 건 비단 정부만이 아니다.  정치인들도 한 통속이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발의된 총 657건의 안전 또는 관피아 관련 법안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거나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대안 반영으로 폐기된 법안은 156건(24%)에 불과했다.  나머지 501건(76%)은 아직 상임위 차원에서조차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정부와 정치인들의 무관심 속에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온갖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있기 일쑤이며,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해야 하는 일이나 막상 사고가 빚어진 뒤 해답을 찾아야 하는 일조차도 여전히 국민들 몫으로 남아있다.

 

 

무능한 우리 정부를 향한 외신들의 비판 목소리는 거세다.  일본 아사히는 "유족의 슬픔은 치유되지 않은 채 진상 규명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은 멀다"고 했으며, 요미우리는 "한국 정부는 사고 후 사회 전체의 안전 대책을 내놓았지만 교통기관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사고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의 아픈 현실을 꼬집고 있다.  AP통신은 "한국인들은 세월호 참사 대응에서 나타난 정부의 책임감 결여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고, CNN방송은 "세월호 참사 1년 후에도 비탄에 잠긴 유가족들이 여전히 해답을 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안전을 마땅히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이에 대한 예방은커녕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피해 당사자들이 만사 제쳐둔 채 진상 규명 등 재난사고에 대한 해답을 직접 구하러 다녀야 하는 이 갑갑한 현실이 아마도 대한민국의 현재 민낯이 아닐까 싶으며, '국민안전 다짐대회'라는 요상한 이름의 형식적인 관변행사는 바로 그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입만 열었다 하면 경제 발전만을 부르짖는 정치인들과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덕목은, 바로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소하지 않은 경제 발전이란 있을 수 없듯, 안전이 우선되지 않은 경제 발전 역시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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