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참사 1주기,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유

새 날 2015. 4. 1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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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흔히 망각의 동물이라 한다.  철학자 니체에 따르면 망각은 결코 이성능력의 부족이나 타성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고 한다.  즉 이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밀어내어 정신적 질서와 안정을 찾게 하는 기능을 한다.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 만큼 과거의 흔적도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자동 프로그램화된 인간의 본성적 특성 탓에 과거의 힘든 일도 어느덧 잊은 채 현재를 살아가게 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  특히 기쁘거나 행복했던 기억보다 괴롭거나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일은 애써 잊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했다.  지난해 4월 16일 비보를 전해들은 온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슬픔에 빠져들어야 했으며 비통해 마지않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상황은 조금씩 변해갔다.  망각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꿈틀거린 것이다.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주장하던 유가족들더러 이젠 지겹다며 그만하라 한다.  비록 섭섭하지만 지겹다고 호소하는 이들의 반응도 전혀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이를 악용하려는 세력의 고의적인 폄훼와 방해 행위는 차치하고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바쁜 일상에 쫓기는 일반인으로서 세월호 유족들의 하소연을 일일이 확인하기란 버거운 일인 데다 좋은 일만 기억하고 싶고, 좋지 않은 일은 하루라도 빨리 잊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이러한 결과를 빚었을 테다.  때문에 세월호 참사를 두고 잊지 못하겠다는 사람들과 이젠 지겹다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함께 공존하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라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세월호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겐 망각이라는 인간의 본성마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말이다.

 

ⓒ국민일보

 

그러나 좋지 않은 기억인 데다 제아무리 지겹더라도 세월호 참사를 결코 잊어선 안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참사가 빚어진 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이 이뤄진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은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몰상식한 현상들을 바라볼 때 그와 같은 개연성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해외 순방을 떠난단다.  물론 추모식 행사 참석을 마치고 간다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정이라면 비록 섭섭하더라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일보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관계 부처 장관들도 해외 출장이나 국회 일정 등으로 대부분 추모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단다.  국회 사무처는 한 술 더 뜨고 나섰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 16일 '4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제목으로 음악 콘서트를 계획했다가 논란이 일자 급히 취소했다. 

 

일부 정치인과 정부 관료에게 있어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임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럴진대 올바른 진상 규명은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참사의 원인과 진실 규명마저 없이, 기껏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만드는 어정쩡한 시늉을 낸 게 정부와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한 일의 전부다. 

 

유가족들을 폄훼하려는 시도도 모자라 이젠 대놓고 배상 및 보상금으로 회유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여전히 9명의 실종자가 선체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세월호 인양 또한 비용 문제를 들먹거리며 차일피일 미루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시늉만 내비치고 있다.  더 웃긴 건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은 선체 인양을 반대했다가 대통령의 한 마디에 얼굴색을 싹 바꾸더니 인양에 찬성하고 나선 상황이다.  정치인들이 코미디를 잘한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이쯤되면 아예 개그맨으로 전업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뭐가 두려워 참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 안 하는 걸까? 

 

그 사이 우리 주변에서는 생활 속 참사가 끊임없이 빚어지고 있다.  유원지에서의 화재, 아파트에서의 화재, 환풍구 추락 사고, 캠핑장 글램핑 화재, 잇따른 싱크홀 발생 등 이루 언급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안전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시시각각 위협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가 마땅히 마련해주어야 할 안전 대책이 미흡한 데다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일상 생활 자체가 지뢰밭을 지나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자 기사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1층, 미운오리서 백조로"라는 제하의 기사다.  과거 방범 채광 등의 이유로 선호도가 낮았던 아파트 1층의 인기가 근래 높아지고 있단다.  최근 분양시장의 열기가 뜨거워 저층까지 잘 팔리는 이유도 있지만, 업체들이 1층 미분양 우려를 덜기 위한 전략 마련에 심혈을 기울인 영향이 크더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난 달리 해석하고 싶다.  요즘 아파트 1층이 잘 나가는 건 순전히 안전 문제 탓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우리 주변에선 여전히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한 데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고 있으니 시민 스스로가 안전 지킴이로 나선 경향이 큰 탓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고 우리 역시 나몰라라 하고 있는 사이, 우리의 생명과 안전 또한 함께 외면 당하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읽힌다.  결국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는 행동만이 정치권과 정부를 긴장시키게 만들 테고, 사회 전체에 가득찬 몰상식한 기운을 몰아내는 도구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테다.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일이 비록 괴롭거나 고통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겹더라도, 이를 망각하는 건 정치권과 정부가 바라는 것처럼 참사의 진실을 덮는 행위에 동조하는 일과 진배없고, 이는 결국 무수하게 빚어지는 안전사고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내던지는 꼴이다. 

 

사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일반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손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진실이 온전하게 밝혀질 때까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는 결국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마음껏 아파하며 슬퍼하지도 못하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보통사람들과 같은 망각의 본성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줄 테며, 더불어 우리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지름길이 되도록 해줄 테다.  세월호 참사를 절대로 잊어선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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