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표현의 자유, 적정선은 과연 어디쯤인가

새 날 2015. 1. 1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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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무장 테러 사건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허용 범위를 놓고 전세계적인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성역 파괴 수준이라 할 만큼 상당히 자극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들의 만평엔 나체로 누드 영화를 찍는 무함마드, 콘돔 착용한 교황, 수녀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고 소아성애자 신부 등이 대거 등장합니다. 

 

딱히 이슬람교만을 콕 집어 표현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풍자엔 성역이 없습니다.  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입니다.  다만 우상 숭배를 우려해 선지자인 무함마드 작화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금기를 깬 행태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꽤나 자극시켰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이번 테러가 타 종교 및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부터 비롯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샤를리 에브도가 금기를 깬 풍자를 통해 이슬람교와 그들의 선지자를 모독했다 한들 이를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응징한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종교적인 이유이든 또는 이념적인 이유이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 행위가 정당화되어선 안 될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보도나 논조에 대한 반대 의견의 표현 방식은 지극히 이성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악의 반인륜적이며 비이성적인 폭력 사태로 불거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특정 종교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만평은 지나치다는 지적과 표현의 자유 역시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노라는 주장이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결코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적정선이 과연 어디쯤인지 명확하게 잘라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그리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표현의 자유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갈등 따위의 문제는 서로 별개의 사안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란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입니다.  여기서 갈등을 유발하지 않을 정도의 표현이라 함은 법과 상식 그리고 도덕적인 테두리 내에서의 문제일 테며,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 자체에 제약을 두게 된다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즉 갈등 유발을 이유로 이에 제한을 가하기 시작할 경우 우리나라처럼 민주주의의 기반이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에서는 정권이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를 교묘히 활용할 개연성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

 

가장 비근한 예로 정부와 집권여당의 최근 행태로부터 이러한 현상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북한의 포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며 탈북자단체의 행태를 눈감아 왔습니다.  그러더니 새해 들어 돌연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로 인해서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문제"라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태도가 왜 돌변했는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새누리당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 권리라고 밝히고 나섰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그 기준이 그때 그때 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표현의 자유란 마치 무슨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모양입니다.  한 마디로 국민의 기본권이 권력의 필요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라면 이는 차라리 없다고 보는 것이 외려 타당하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사실 우리의 현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적정선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암울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지난해 세월호와 대통령을 풍자한 광주비엔날레 파문은 예술가들의 표현 영역마저 선을 그어버린 대표적인 사례이며, 최근엔 정윤회 국정개입 논란을 비꼬는 낙서와 대통령의 종북몰이를 비난하는 전단지에 대해 공권력이 과도할 정도로 대응하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상들마저 빚어진 바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이버 명예훼손 대응팀을 꾸려 대통령에 대한 명예 훼손을 시도한 국민들을 모두 색출하겠노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국민 메신저 카톡에 대한 감찰 논란으로 외국 메신저로 대거 갈아타야 하는 기현상마저 벌어져야 했던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혹자는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인정된다 해도 갈등 유발의 자유마저 무한정 허용되는 수준까지 가선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특히 이번 프랑스 테러 사태 이후 이와 같은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갈등을 불러오고 최악의 경우 이러한 테러 행위마저 유발시키고 말았지만, 그래도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되고 있는 프랑스에서의 논란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마냥 부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다른 측면에선 표현의 자유가 한껏 보장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엔 표현의 자유를 빙자히여 도를 넘어선 일탈 행위를 벌이는 세력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권력은 신기할 정도로 이들에게 무한정 관대하기만 합니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망동을 표현의 자유라 주장하고 있지만 실은 반 인륜적 패륜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들의 배설물이 사회를 오염시켜 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심지어 혐오한다는 이유만으로 백주대낮에 폭탄을 던지며 테러행위를 일삼는 집단도 존재합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들의 사이트를 폐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혹여 도를 넘는 일탈 행위가 지속적으로 벌어지며 사회를 오염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때로는 백색테러와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표현의 자유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는 엄연히 분리하여 대응해야 하는 것이 분명 맞을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은 프랑스와 같은 자유는 그저 언감생심에 불과할 뿐, 현재의 권력은 국민의 기본권마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시키려 들고 있고 국민들은 그에 맞춰 자기검열에 열심인 채 알아서 숨 죽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란 인류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입니다.  특정한 조건 따위로 양보할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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