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청와대 정무수석 항명이 의미하는 세 가지

새 날 2015. 1. 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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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김영한 정무수석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한 데 대해 10일 사표가 수리됐습니다.  청와대 사상 초유의 '항명 사퇴'로 불거진 것입니다.  정국은 다시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정치공세에 굴복해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석하지 않겠다. 다만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하는 것이 도리이다"라는 입장을 내비쳤고, 김영한 전 수석 또한 '내가 비서실장에 항명해 사퇴한 게 아니다. 나는 박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퇴했다"며 해명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일보

 

그러나 청와대와 김 전 수석 본인의 주장은 말 그대로 해명에 불과할 뿐,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와르르 무너진 국정컨트롤타워 청와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띱니다.  전체를 지탱하고 있던 큰 축 하나가 무너진 것으로 비칠 만큼 치명상으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문건 유출 파문에 이어 또 다시 청와대의 기강 해이가 중차대한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청와대가 이러할진대 대통령의 지시가 아래로까지 자연스레 스며들기를 바란다는 건 결국 어불성설이란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른바 '십상시'라 불리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보았듯, 검찰 수사를 그대로 믿는다는 전제 하에, 청와대 직원들의 사심에 의해 벌어진 사건 치고는 꽤나 파급력이 컸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정무수석까지 사심(?)을 부리고 나섰으니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싶습니다.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대한민국 전체를 커다란 혼란에 빠뜨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여론과 민심동향 파악, 그리고 공직 및 사회기강, 법률문제 보좌, 민원업무 등을 담당하는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번이 벌써 세번째 불명예 퇴진입니다.  그동안 소통과는 거리가 먼, 불통 행보를 보여 오며, 청와대의 기강마저 잡지 못했던 대통령의 무능함에 대해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이 가늠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박 대통령의 내상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두번째로 정윤회 문건 파동의 검찰 중간 수사 결과에 대해 청와대가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전 수석의 항명은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에 대해 다시금 불을 지필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더욱 힘이 실리는 이유는 한국갤럽이 9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를 국민 10명 중 2명만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쯤되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무리수가 검찰의 신뢰마저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더 나아가 국민들이 이번 정부 전체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김영한 전 수석의 항명은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국정개입과 관련한 수많은 의혹들이 여전히 수면아래에 감춰져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니, 제대로 된 수사로 국민들의 의구심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한 언제고 간에 그 의혹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채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을 개연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사저널

 

세번째로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후기 권력 누수 현상의 단초 역할을 하게 될 테고, 이를 가속화시킬 우려마저 점쳐지고 있습니다.  집권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박 대통령, 정치권은 현재 권력보다 미래 권력을 바라보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속성이거늘, 때마침 2016년 4월에 치러질 총선과 차기 대선을 향해 벌써부터 줄세우기 내지 권력 다툼 현상이 불거지며 계파 간 갈등이 점차 부각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빚어진 친박과 비박 간의 첨예한 대립은 앞으로의 권력 다툼 양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미래 권력을 향한 본격 레이스를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 등 현재 권력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왔던 현 정권은 이번 항명 사퇴를 기화로 점차 동력을 잃어갈 공산이 큽니다.

 

한편 정윤회 문건 파동이 불거지며 청와대 인적쇄신론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꿋꿋하게 인적쇄신에 대해선 한 마디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이는 정치적 공세 내지 위기 상황에 몰릴 때마다 인적쇄신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행위는 진정한 쇄신이라기보다 꼼수적 성격이 짙다고 여기던 평소의 지론이 반영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어떠한 악재 속에서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이번 김영한 전 정무수석 항명 파문이 곧바로 인적쇄신으로 이어질지의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물론 여론은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으로 비칩니다.  결국 12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이의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만, 그녀의 성격으로 짐작해 보건대 그 모양새는 어떨지 몰라도 어쨌든 또 다시 강공모드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와는 별개로 이번 김영한 항명 사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박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켜 나갈 공산이 크다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에 비례해 또 다른 무리수들이 창궐하리라 예상되어 우려스럽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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