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허울뿐인 통신사 '청소년 요금 상한제' 이대로 좋은가

새 날 2014. 9. 24. 08:10
반응형

얼마전 카드결제 청구서를 받아든 난 평소 보기 힘들던 숫자 하나 때문에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아들녀석의 휴대폰 요금 때문이다.  13만원이 넘게 찍혀 있었다. 

 

물론 통신량이 많은 사람들 입장에선 13만원쯤이야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우리 가족의 경우 인터넷 회선 하나를 매개로 온 가족이 노예계약(?)으로 묶인 채 전체 기본요금의 50%를 할인받아 사용해오던 터라 상대적인 충격이 큰 편이다.  그동안 가족 모두가 사용한 요금을 합쳐 봐야 인터넷까지 포함, 월 5만원 남짓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중 한사람, 그것도 청소년, 의 요금이 무려 13만원을 넘어섰으니 혈압이 오를 만하지 않겠는가.  난 청소년 요금 상한제를 이용 2만5천원 이상 사용 불가하도록 묶어 놓았기에 평소 요금이 얼마나 나오는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아왔던 터다.  실은 청소년요금제의 존재의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일 테다.

 

 

고객센터를 통해 자초지종을 물었다.  수신자부담서비스를 이용한 결과란다.  이는 전화를 받기 전 과금에 대한 안내가 먼저 이뤄지기에 아이가 모르고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안내원의 일관된 주장이다.  만일 그렇다면 청소년 요금제의 애초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는 결과가 되는 셈 아닌가. 

 

실제로 청소년요금제를 이용하는 건 바로 심신이 미약한 미성년 아이들이 스스로 통신량을 조절할 능력이 안 되기에 최고 상한금액을 정해 일정 수준 이상 사용치 못하도록 묶어 놓아 통신요금 과다 청구의 공포로부터 부모를 해방시키려는 이유일 테다.

 

난 아이가 휴대폰으로 결제할 수 없도록 소액결제 서비스를 사전에 막아 놓았고, 데이터 서비스마저 이용할 수 없게 해놓아 기껏 사용해도 2만5천원 한도를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완벽한 방어 태세라며 스스로 흡족해 하고 있던 찰나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수신자부담서비스로 인해 구멍이 숭하고 뚫린 셈이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안내원에게 하소연해 봤다.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말씀엔 공감합니다만,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수신자부담서비스센터란 곳이 통신사와 별개로 존재하는데, 그곳 고객센터로 연락하여 해당 서비스 차단을 의뢰하실 수 있도록 번호 하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후약방문 격 아닌가.  그냥 공부한 셈치고 쿨하게 결제한 뒤 아이 통제나 잘 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전화를 끊은 뒤 곰곰 생각해 봐도 요금 정책이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다.

 

 

그때다.  3년전 기사 하나가 떡하니 눈에 들어온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청소년들의 이동전화요금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 요금상한제에 수신자부담서비스를 확대 적용하는 대책을 마련했다는 내용이다.  청소년요금제의 요금상한제에 수신자부담서비스 요금이 포함되지 않아 이를 이용할 경우 과다요금이 부과되는 사례가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대책이란다. 

 

'옳거니 바로 이거다.'

 

구체적으로는 통신 3사를 통해 이용요금이 상한으로 정한 금액을 초과할 시 자동으로 차단 조치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며, 2012년 상반기부터 시행키로 했단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의 경우는 도대체 무언가?  상한으로 정한 요금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으로 차단되지 않았다는 건 아직 반영이 안 되었다는 의미 아닌가?'

 

다시 고객센터로 연락했다.  안내원에게 해당 내용을 얘기하고, 현실은 그와 다른데 어떻게 된 노릇이냐며 따져 물었다.  관련 물증을 들이대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탓인지 그전과는 달리 해당 문의사항을 윗선에 접수시키겠단다.  대략 1시간 뒤 책임자라고 밝힌 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분 마치 선심 쓰듯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는 안 되지만, 일단 처음 있는 일이고 하니 저희 통신사에서 수신자부담서비스와 관련한 요금 전액을 감액시켜 드리겠습니다."



난 그보다 방통위에서 마련한 대책이 왜 반영되지 않았는가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그에 대해선 저희가 좀 더 알아 봐야 할 사안입니다.  아울러 확실한 건 수신자부담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지금처럼 상한으로 정한 요금 이상 사용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고, 때문에 정 필요하다면 앞서 안내드렸던 수신자부담서비스센터에 연락하여 직접 차단하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다만, 고객님께서 제시해 주신 제안들이 지켜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는 회사가 되겠습니다."

 

이제 결론은 보다 명확해졌다.  청소년요금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요금상한제에 수신자부담서비스를 적용하는 대책은 실제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다른 두 개의 통신사는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현재 이용하고 있는 통신사의 행동으로 보건대, 비용을 자신들이 대신 부담하면서까지 과잉 친절을 베푸는 걸로 봐선 무언가 뒤가 구린 느낌이다.

 

쉽게 돈을 벌려는 욕심이 청소년들의 과도한 통신요금 제한 조치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게 만들고 있는 듯싶다.  입으로만 고객님이라 떠벌릴 뿐 실제로는 우린 영원한 호갱님이었던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요금제를 청소년요금제로 지정하고 또 요금상한제를 이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요금 폭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렇듯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마음 놓고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손에 쥐어줄 수 있겠는가.  통신사들은 유명무실한 청소년요금 상한제를 당장 개선하시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