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침몰, '재난보도 권고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새 날 2014. 4. 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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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던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의 체육관 붕괴사고는 이번 대형참사의 전조일까?  그도 아니라면 모 언론에서 지적했듯 과연 새누리당 인천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의 입방정 탓으로 돌려야 할까?

 

물론 둘 다 틀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진도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낳은 또 하나의 대형 인재에 불과할 뿐이다.  모두가 가슴 아파하며 인정하고 싶지 않아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을 뿐 결국 초대형 참사로 마무리짓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어른들의 잘못 탓에 아직 채 피어나지도 못한 애꿎은 아이들만 목숨을 잃게 됐다.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생때같은 아이들과 기타 탑승객들 수백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침착해야 할 정부조차 우왕좌왕해야만 했고, 온갖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로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심지어 이번 세월호의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하는 언론보도도 있었고, 반대로 소형 무인기의 조작 전모가 드러나게 되니 이를 감추기 위해 정부가 음모를 꾸몄다는 등의 말도 되지 않는 허위 정보들이 난무했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은 이렇듯 언제든 양날의 검이 되어 우리를 다시 겨눌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재난 상황에서의 허술한 대응이나 우리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은 해가 지나고 수많은 사고를 경험해 오면서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신기할 정도로 묘한 악습과도 같다.  아울러 이런 재난상황을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 이용하려는 개인과 세력들 또한 어디서건 활개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다름아닌 우리 언론들의 보도 행태다.  요즘 '기레기'라는 용어를 온라인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언론사 기자들이 진지한 문제의식 없이 오로지 어뷰징성 기사만을 남발하는 행태를 빗대 네티즌들이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다. 

 

지면에서 온라인상으로 무게추가 옮겨진 이후 워낙 경쟁이 치열해진 언론 시장인지라 어뷰징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은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아무리 생생한 현장 보도라는, 언론인의 사명감에서 비롯된 행위라 하더라도, 이번 사고 수습 상황에서의 우리 언론사와 소속 기자들의 행태는 문자 그대로 '기레기'에 가까웠다. 

 

아래는 일부 언론들이 뽑은 기사 제목과 캡쳐화면이다.

 

조선일보(chosun.com) : 세월호 보험, 학생들은 동부화재보험, 여객선은 메리츠 선박보험 가입
JTBC : 생존 학생 인터뷰 중 친구의 사망 소식 전달

이투데이 : 타이타닉,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
비즈포커스 :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메리츠-동부화재 보상금은?
이투데이 : SKT, 긴급 구호품 제공, 임시 기지국 증설 "잘 생겼다 잘 생겼다~"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입게 될 상처는 아랑곳 없이, 또 국민들이 입게 될 트라우마 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언론사들의 어뷰징 경쟁은 타인의 비극을 이용해 장사를 꾀하고 있는 일부 기업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연유, 재난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우리의 언론 환경 탓이 클듯싶다.  한국기자협회는 2003년 재난보도 가이드라인 제정을 추진한 바 있으나 당시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초안에는 피해상황 전달보다 향후 전개될 추가 피해 예방 및 방지 주력, 재난구조본부에서 정한 통제선 준수, 불확실한 내용의 검증 및 유언비어 발생과 확산 억제 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2003년 제정하지 못했던 초안 수준 정도라도 잘 지켜졌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극심한 혼란은 야기되지 않았을 테다.

 

물론 아무리 재난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다 해도 강제적인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수준에 불과하기에 결국 언론사와 기자들의 윤리 의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라인이 마련된다면, 재난보도와 관련하여 여전히 후진국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에게 그릇된 정보와 눈살 찌푸리게 하는 보도 행태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판단된다.

 

또 다시 초대형 참사를 통해 시험받고 있는 우리, 네탓 내탓 공방보다는 빠른 구조와 침착한 사고 수습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한데 모아야 함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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