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북한 이산가족상봉 거부, 통일보다 신뢰회복이 우선

새 날 2014. 1. 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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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란 표현과 함께 북한 측에 남북이 새로운 대화의 틀을 만들어가자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제의했다.  하지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9일 우리 측에 전달한 판문점 통지문을 통해 이러한 정부의 상봉행사 제의를 공식 거부했다.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거부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며 먼저 운을 뗀 바 있고, 우리 정부가 이에 화답하는 형식을 갖췄지만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채 상호간 불신의 벽이 높아진 상태인지라 서로 쉽게 마음의 문을 터놓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통지문의 끝 언저리에 우리의 제안도 다 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만날 수 있음을 밝혀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는 부분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파행을 보이던 개성공단 사태가 지난해 8월 14일 제7차 남북간 실무회담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되었고, 이후 추석 이산가족상봉을 이끌어내며 한껏 기대감을 부풀리게 하던 남북관계가 우리의 경직된 자세와 북한의 돌출행동이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이산가족행사 돌연 연기라는 결과를 낳게 한다.

 

우리의 유연하지 못한 강경 일변도 대북관과 예측 불허의 혼란스런 북한 상황으로 인해 이후 남북관계는 더 이상의 진척없는 냉랭한 상태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정부는 남북관계에 대한 개선 노력 따위 전혀 없이 그저 넋 놓은 채 북한의 태도 변화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면서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정상 작동하고 있노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기 바쁘다.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 기대감 상승?

 

그런데 대통령의 통일 관련 발언은 그동안 파행을 겪어온 남북관계와 이에 대한 우리의 변변찮은 노력 등을 고려해 볼 때 다소 시의성이 떨어지는, 뜬금 없는 주장으로 읽힌다.  사실상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거의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한 상황에서 갑자기 왜 통일이란 화두를 끄집어낸 것일까?

 

시기적으로 본다면 참 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북한 내부 권력 2인자 장성택의 처형과 주변인들에 대한 숙청 소식이 연일 우리의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했고, 북한의 정정 불안 소식에 온통 신경을 한쪽으로 집중시켜 왔던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전혀 없이 갑작스레 그보다 훨씬 진척된 통일 얘기를 끄집어냈으니 의아하지 않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정도다.



더군다나 정부와 여당 일부의 움직임 또한 이러한 상황에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지난해 송년회 자리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이면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다 같이 죽자고 했단다.  이어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과 당협위원장 초청 만찬에서도 '통일로'라는 건배사가 등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8일 북한의 변화를 조기에 이끌어내고 급변사태 등을 위한 한미 간 혹은 중국을 포함한 다자간 협의를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정부가 통일이후 각종 법령정비 - 일명 통일헌법 - 를 위한 부처간 협의체를 만들기 위해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청와대 직속 '통일 법제 추진 태스크포스'를 구성, 법무부, 통일부, 법제처 등 정부 각 부처에서 통일 대비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모여 통일 이후의 법령정비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9일 알려졌다.  물론 사실무근이라는 정부의 설명이 덧붙여졌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과연 연기가 날 수 있는 걸까?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을 전후로 한 정부와 여권의 일련의 움직임들을 볼 때  현재 북한의 정정 불안 요인을 체제 붕괴로까지, 더 나아가 이를 흡수 통일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통일 논의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부터

 

물론 북한 내부의 변화와 그로부터 발생할지 모르는 급변 사태에 대해 사전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분명 맞다.  평소 북한의 돌출행동이 워낙 잦아 럭비공 마냥 어디로 튈지 예단할 수 없던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간 신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 체제의 붕괴로 흡수통일이 이뤄지게 된다면 대통령의 발언처럼 과연 대박이 이뤄질까?  아닐 테다.  이는 우리에게도 불행이며, 나아가 한민족 전체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상호 교류를 통해 신뢰를 다지고 화해하며 동질성을 회복하는 필수 과정 없이는, 자칫 한반도 전체의 극심한 혼란을 부추겨 최악의 경우 내전 상태로까지 치닫는, 대박은 커녕 오히려 쪽박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는 법이다.  통일에 앞서 우선 동토처럼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는 일이 급선무다.  더군다나 통일은 한민족의 미래가 달린 일이거늘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 의지는 털끝 만큼도 없이 그저 북한의 급변 상황만을 기다리며 자체 붕괴될 것처럼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함께 군불을 피우며 분위기를 띄우는 행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정부가 진정 통일을 바란다면, '통일은 대박이다'란 선정적인 구호를 외치기보다 남북간 신뢰를 다지기 위한 노력 경주에 온 힘을 쏟아야 할 테다.  남과 북이 교류를 통해 신뢰가 쌓이고 서로간의 동질성이 회복되다 보면 굳이 통일이란 억지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한민족은 자연스레 통일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과 북 양측은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진정성 없이 서로간 기싸움의 도구로 써먹는 행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이산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가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진정성 없이 정략적으로 사용하려 함은 이들의 가뜩이나 아픈 가슴에 대못질을 하는 행위에 진배없다.  이산가족상봉행사 만큼은 인도주의적 정신에 입각, 양측 모두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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