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세번의 다른 삶을 사는 남자 이야기 『빅픽처』

새 날 2012. 9. 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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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더글라스 케네디, 출판사 : 밝은세상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 비록 만족스럽더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이 진정 하고 싶고,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또 다른 삶을 살아보고픈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적 없는가? '빅픽처'는 우연히 자신의 삶 대신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된, 어떤 한 남자의 기 막힌 운명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인공 벤, 어릴 적 우연히 그의 손에 쥐게 된 카메라 한 대가 그의 삶을 뿌리채 흔들어 놓게 될 줄 그는 꿈에도 몰랐으리라. 카메라에 흥미를 갖게 된 벤은 사진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좋은 교육 받고 훌륭한 직장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는 부모는 그런 그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결국 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부모의 뜻에 따라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고 졸업후엔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그는 사진 찍는 일을 늘 동경하게 되고,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취미 생활로나마 위안 삼으며, 값 비싼 장비들을 갖추는 등 나름 유명 사진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 간다.

 

그의 아내 베스는 30대 후반임에도 여전히 아름다우며, 소설가로서의 성공을 꿈꿔 오지만 번번이 출판사들로부터 퇴짜를 맞는다. 그녀는 자신이 일로 성공하지 못하고, 평범한 전업주부가 되어가는 것이 남편 벤 때문이며 전적으로 그의 탓으로 여기는 듯하다. 때문에 누구보다 예쁜 아이들 둘을 키우며 물질적으로는 전혀 부족함 없는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남편 벤과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아내는 벤에게 이혼을 요구하게 되고, 그러던 중 벤은 아내가 이웃의 별 볼일 없는 사진가 게리 서머스와 불륜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후 게리의 집을 찾은 벤은 게리와의 대화 중 치솟는 분노를 참지 못해 그만 그를 살해하고 만다. 잠시후 정신을 가다듬은 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을 깨닫는다. 이후 변호사 다운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그의 행위는 완전범죄로 탈바꿈되어지며, 벤 자신은 끔찍한 요트 사고로 인해 죽은 것으로 처리되고, 게리의 삶을 대신 살게 되는데...

 

게리를 죽이고 게리의 삶을 대신 살게 된 벤,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한마디...

정말 한 순간에 모든 걸 빼앗길 수 있는 게 삶이야. 우리 모두는 그런 순간이 언젠가 다가오겠지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야.


게리의 살해 이후 이 소설의 장르는 갑자기 스릴러로 둔갑한다. 냉동고에 보관된 게리의 사체를 끄집어내어 전기톱으로 토막내고 요트로 옮길 때의 묘사는 무척 리얼하기까지하다. 아무튼 짧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후로의 사건 전개는 정말이지 긴박하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지며,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흡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있던 터라 영화로의 제작도 이뤄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역시... 의외로 헐리우드가 아닌 프랑스에서 제작되었다는 역자의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미국 태생이면서 정작 미국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저자의 성향 때문이었을까.. 영화의 제목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 아직 국내 개봉은 안 된 듯하다.

 

벤의 사진 찍는 솜씨는 다행히 죽은 게리보다는 꽤 좋았었는가 보다. 그가 게리의 삶을 살기 시작하게 되며 넘어간 서부 몬테나에서 사진 작가로서의 성공이 이를 대변해 준다. 하지만 그는 늘 도망다니는 신세로 마음 한켠에선 유명해지길 바라고 있지만, 자신의 정체와 범죄 행위가 들통날까봐 성공조차도 그에겐 불편하다.

 

벤이 어릴적부터 그토록 동경해 왔던 사진 작가였고, 또한 그것으로의 큰 성공을 이루게 되지만 늘 불안하기만 한 벤의 삶...

지붕을 깨끗이 치웠을 때 얻는 것은? 답 "텅빈 지붕", 다른 답 "자유"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자유, 그 텅 빈 지붕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밖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란 끝없는 무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니까. 아무 것도 없는 영역을.


글쎄 다행인 걸까 불행인 걸까... 벤은 게리 서머스의 이름으로 몇 편의 사진들이 유명세를 타게 되어 그에 따른 돈과 명성을 거머쥐게 되고, 엔이란 여성을 만나 사랑도 하게 된다. 그의 유명세는 일개 주인 몬테나를 벗어나 전국구화 되어 가고, 이로 인해 그가 우려하던 사단이 결국 벌어지고 만다. 그의 사진 전시회 첫날 예전 아내 베스를 만나게 되고, 그는 혼비백산 도망치다 그의 자동차로 그만 사고를 당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다행히 그는 도중에 빠져 나오지만 운전하던 동료가 죽게 되고, 이는 게리의 죽음으로 덧씌워진다. 결국 벤은 벤과 게리, 두 사람의 삶 모두를 잃고, 또 다른 사람으로의 삶을 살아야....

 

벤이 선택한 길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었고, 이는 모두 스스로 저지르게 된 일이란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비탄은 자신만이 갖고 있는 어두운 방이다. 난 내 스스로 자초해 그 모든 걸 잃었다는 것이다. 게리를 죽이면서 내 인생도 죽인 것이다. 나는 한때 내 인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죽은 후에야 깨달았다.


엔과 함께하는 세번째의 삶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벤으로서의 삶' 때 가정을 꾸려 나은 아이들인 애덤과 조시를 보고 싶어 벤은 무작정 차를 몰고 밤새 내달리다 결국 돌아올 곳은 현재의 집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쓸쓸히 돌아오는 그의 모습에서 일전에 벤의 친구 빌이 그에게 던졌던 의미심장한 충고가 강하게 뇌리에 박힌다.

인생은 지금 이대로가 전부야. 자네가 현재의 처지를 싫어하면, 결국 모든 걸 잃게 돼.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지금 가진 걸 모두 잃게 된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을 거야. 세상일이란 게 늘 그러니까


우린 늘 현재의 삶에 대해 불만 투성이인 채 살아가고 있고, 언제나 보다 나은 삶, 이상적인 멋진 삶을 꿈꾸고 있지만, 결국 현재 주어진 삶이 최고의 가치 있는 것임을 벤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일깨우고 있는 듯하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묘한 분위기의 그림이 갖는 의미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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