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야.. 영화 '습도 다소 높음'

새 날 2022. 1. 2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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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배우 지망생 승환(백승환)은 소개팅을 위해 카페를 찾는다. 하지만 그와 자리를 마주한 소개팅녀(이자은)는 왠지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하긴 이 찜통 더위에 관리가 안 된 긴 머리털 하며 덥수룩한 수염도 그렇거니와, 원색의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빨간 외투까지 걸친 차림새는 누가 보아도 우스꽝스러운 패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였을까? 승환은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동상이몽이 되어간다. 사달이 발생하는 건 바로 그즈음이다. 이희준(이희준) 감독이 연출하고 승환이 배우로 출연한 영화 <젊은 그대>의 관람을 위해 두 사람은 시내에 위치한 작은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은 코로나19 시국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시사회가 진행되는 한 상영관을 공간적 배경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물이다. 영화 <델타 보이즈>와 <튼튼이의 모험>으로 고정 팬층을 확보한 고봉수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개성 넘치는 배우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 등이 출연했다. 이른바 ‘고봉수 사단’의 작품이다.

 

상영관은 시내에 위치한 매우 작은 규모였다. 상영관은 최근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곳의 업무는 찰스(김충길)라 불리는 직원 한 사람이 거의 도맡다시피 하는 처지였다. 워낙 작은 규모이고 코로나19 이전에도 손님이 뜸한 편이긴 했어도, 어쨌거나 엎친 데 덮친 격인 것만은 분명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실내에서는 에어컨 가동이 전면 금지됐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승환과 소개팅녀, 이 두 사람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온 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는 상영관 내에서 승환은 그녀에게 손풍기를 건네거나 쿨 스프레이를 뿌려주는 등 나름의 방어 전략에 나서 보지만, 코로나19라는 특수 시국 앞에서는 천하의 승환인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소개팅녀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뒤 종적을 감춘다. 그가 건넨 물건들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이후 영화는 무게중심의 축을 시사회로 옮겨간다. 상영관 실내는 여전히 무덥고 습도도 높다. 이런 가운데 시사회 사회자로 참석한 영화 평론가 전찬일(전찬일)은 어떻게든 음료 한 잔을 공짜로 마시겠다며 찰스에게 억지 생떼를 부린다. 뿐만 아니다. 극중 영화 <젊은 그대>를 연출한 이희준 감독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냐며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른 방문 기록조차 남기지 않으려 한동안 버틴다.

 

 

영화는 시사회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 중 벌어지는 황당한 에피소드에서 극의 정점에 다다른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코로나19라는 특수(?)와 만나 놀라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어딘가 조금은 모자라는 듯한 캐릭터들이 코로나19 시국에 얼마나 더 찌질해질 수 있는가를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아예 작정하고 망가진다.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사장에게 재치있게 떠넘기는 찰스의 신공, 그리고 이른바 진상 고객을 향해 강력한 응징에 나선 영화관 사장의 융통성 없는 행위는 양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답답한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묘한 통쾌감을 안겨준다.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현란한 언어를 구사하며 이희준 감독을 향해 무한 팬심을 드러내던 외국인 처자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관객도 덩달아 유쾌해진다.

 

 

영화 속 영화, 즉 액자식 영화를 표방한 이번 작품에서는 <젊은 그대>라는 좀처럼 정체성을 헤아리기 쉽지 않은 작품에 꽤 긴 시간이 할애돼 있다. <젊은 그대>에서 지혜 배역을 맡아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해낸 차유미의 저돌적인 연기는 관객을 당혹감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런 그녀를 남몰래 훔쳐보며 호감을 갖게 되는 주환(고주환) 캐릭터와 자신이 출연한 해당 신을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면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그의 모습은 더욱 당황스럽게 한다. 모르긴 해도 그녀처럼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두 번 이상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은 코로나19로 지쳐가는 이들에게 작정하고 웃음을 선사해준다. 아무 생각 없이 관람하다 보면 찌질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어이 없는 에피소드 향연에 웃음이 피식하며 절로 새어 나온다. 짐작건대 기온과 습도가 유난히 높은 한여름에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를 쓴 채 이 영화를 관람한다면 그 감흥은 두 배로 다가올 것이다. 

 

 

감독  고봉수

 

* 이미지 출처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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