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잔혹 동화.. 영화 '호랑이는 겁이 없지'

새 날 2022. 1. 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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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래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 정부. 이로 인해 멕시코에서는 수만 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며, 일부 지역은 폐허로 돌변했다. 샤이네(후안 라몬 로페즈)는 이 난리통 속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년이다. 샤이네는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고아가 되거나 미아가 된 또 다른 아이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자처하며 폐허로 돌변한 도심에서 떠돌이 생활 중이다. 

 

한편 총격 사건으로 휴교령이 내려져 꼼짝없이 집에 발이 묶인 에스트렐라(파올로 라라). 총격 사건이 있었던 그날 그녀의 엄마도 실종됐다. 더 이상 집에 머물 수 없게 된 에스트렐라는 샤이네가 이끄는 무리에 합류한다. 샤이네는 그녀에게 엄마를 납치해 갔을 것으로 추측되는 마약 카르텔 조직의 행동원 까꾸(이아니스 게래로)의 제거를 종용한다. 까꾸의 집에 몰래 잠입한 에스트렐라. 하지만 까꾸는 이미 숨져 있었다.

 

 

영화 <호랑이는 겁이 없지>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멕시코의 참혹한 현실을 아이들의 시점에서 바라본 일종의 잔혹 동화다.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연출한 또 다른 잔혹 동화 <판의 미로>의 제작진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인지 극 곳곳에 활용된 판타지 기법과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는 어쩐지 낯이 익다.

 

 

 

하루 아침에 마약 카르텔 행동원 까꾸를 살해한 인물로 지목된 에스트렐라. 샤이네 무리와 그녀는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노릴 것을 염려, 숨어 지내던 아지트를 옮기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조직원들이 아지트의 코앞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쫓기는 처지에 놓인 이 아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멕시코 정부가 마약 카르텔과 벌인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됐다. 부패한 정치권과 정부 하에서의 치안은 제 역할이 어려웠다. 이는 극중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은 결정적인 증거물 제시와 동시에 마약 카르텔 수장 치노(테노크 후에르타)를 살인 혐의로 신고함에도 불구하고 경찰관들은 이를 모른 척한다. 치노는 막강한 경제력을 등에 업고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거물급 인물이었던 까닭이다. 폭력, 살인, 감금 그리고 인신매매 등 반인륜 범죄 행위가 대낮 도심에서 버젓이 벌어져도 누구 하나 이를 제지하지 못 했다. 

 

 

 

지난 2006년 이래 지금까지 멕시코에서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수십만에 이르고 실종자 숫자도 십만에 육박한다. 실종자 가족의 다수는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만이라도 찾고 싶다며 생업을 포기한 채 지금 이 시간에도 암매장지를 찾아 멕시코 전역을 누비다시피 하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 그리고 치안 부재로 인한 일상 속 폭력은 일반적으로 가장 약한 고리인 아이들을 비롯한 약자에게 큰 타격을 가하는 법이다. 고아가 된 아이들은 오로지 살기 위해 동화 속 겁 없는 호랑이를 자처해야 했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호랑이, 왕의 후계자이자 전사인 호랑이가 되어 세상을 폭력으로 온통 시꺼멓게 물들인 악의 무리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영화 <호랑이는 겁이 없지>는 멕시코 아이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져 온 세 가지 소원과 호랑이를 소재로 꾸민 동화를 차용하여 멕시코의 현실을 담아낸 작품이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멕시코의 현실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이 아비규환의 세상은 꿈과 희망을 모두 거세 당한 채 밝은 판타지가 되어야 할 동화마저도 잔혹함으로 변모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겁 없는 호랑이가 무쓸모한 세상을 바란다.

 

 

감독  이사 로페즈 

 

* 이미지 출처 : (주)루믹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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