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찐' 유감

새 날 2020. 12. 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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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생명체와 다를 바 없다. 끊임없이 만들어지거나 사라지며 손바뀜을 거듭한다. 때문에 시대의 변화상이 언어에 투영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찐’은 근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속어 가운데 하나다. ‘가짜’라는 의미의 ‘짭’이 비대칭이었던 까닭에 애써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였을까? ‘진짜’라는 의미의 ‘찐’을 만들어낸 것이다. 언어를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닌, 놀이나 유희의 도구로까지 그 쓰임새를 넓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재기발랄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대견스럽다. 


모두가 알다시피 ‘찐’이라는 단어는 속어다. 일반 대중에게 널리 통용되면서도 정통어법으로부터 벗어나있는 비속한 언어가 다름 아닌 속어다. 여기서 ‘비속(卑俗)’이란 ‘격이 낮고 속됨’을 의미한다. 



‘찐’이라는 단어는 표준어가 될 수 없다. ‘짭’이 제아무리 대중들에게 널리 사용된다 한들 그 격이 지나치게 낮은 데다 단지 속어로써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는 것처럼 태생적 한계, 즉 ‘짭’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에서 ‘찐’은 서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짭’도 그렇지만, ‘찐’의 발음이나 어감은 경박하기 이를 데 없다. 외자임에도 불구하고 된소리(경음)로 발음이 되는 영향 때문이다. 


이러한 신조어가 대중들, 특별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널리 통용된다는 사실은 별다른 논란거리라고 볼 수 없다. 이들은 그저 재미삼아 툭툭 내던지다가도 싫증나면 또 금세 다른 흥밋거리를 찾는 경향이 뚜렷하니 말이다. 게다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언어에는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특징이 있다. 신조어 역시 변화의 조류 틈바구니에서 파생된 결과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역시나 이번에도 문제는 방송과 언론 등 대중매체에 있다. 근래 방송 자막에는 비속어가 남발한다. 특별히 인기 예능 프로그램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비단 ‘찐’만이 아니다. 대중들의 일상 속 비속어를 이것저것 잘도 끌어다 쓰는 재주에, 각 방송사 작가와 PD들이 아주 능통하다. 그렇다면 표준어를 놔두고 굳이 비속어를 남발하는 이유는 무얼까. 시청자들의 시선을 특정 채널에 고정시켜놓기 위함이다. 언론 매체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 역시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최대한 페이지뷰 수를 늘리기 위해 비속어를 남발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로부터 자정 작용 따위는 일절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들의 행위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이다. 방송윤리나 보도준칙 따위는 개나 주라 한다. 언어는 생명체와 같아 끝없이 변화하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명제이지만,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대중매체가 저속한 방식으로 대중들의 언어생활에 개입하고 이를 부추겨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정말 꼴불견이다. 



최근 대중들 사이에서는 ‘기레기가 기레기했네’ 라는 표현이 널리 회자 중이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왜 아닐까 싶다. 비속어 남발을 통해 격을 확 낮추는 행태를 스스로들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욕을 잔뜩 처먹어도 싸다. 


언론의 이미지를 대변해온 ‘기자’. 이 기자가 ‘기레기’에서 어느덧 ‘기더기(기자+구더기)’로 진화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언어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듯이 해당 현상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시대적 조류로 받아들여져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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