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위기의 세계경제와 동학개미운동, 이번엔 다를까

새 날 2020. 5. 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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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공황 이후 90년 만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전 세계의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는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신규 실업자가 3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처럼 실물경제가 어려운 국면 속에서도 최근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를 빗대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2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흔들리는 세계경제와 동학개미운동’ 편에서는 위기의 세계 경제 상황과 동학개미운동 현상에 대해 짚어봤다. 


최악의 경기 침체 예상되는 세계경제


코로나19로 인해 3월 중순부터 자택 대피령이 내려진 미국에서는 불과 6주 만에 무려 3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일자리 숫자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미국은 코로나19의 방역 초기대응에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어느 영역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인 곳이 있다. 다름 아닌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FED)다. 두 차례에 걸친 파격적인 금리인하와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새로 찍어낸 돈을 시중에 공급하는 통화정책)’를 대거 살포했다. 



오건영 신한AI 자본시장 분석담당은 “지난 2010년에 2차 양적완화가 이뤄졌다. 8개월 동안 6천억 달러를 퍼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 일주일 동안 6천억 달러가 넘는 돈을 퍼부었다. 8개월 동안 할 것을 단 일주일 만에 쏟아 부은 셈”이라며 “이후 금융 시스템은 어느 정도 안정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돈을 퍼부은 만큼 부채가 많이 늘어났다. 미국의 기업 부채는 이미 금융위기 당시의 수준을 넘어선 상태”라고 주장한다.


오랜 기간 저금리로 누적된 미국 기업의 부채 문제는 이른바 ‘회색 코뿔소(개연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위험)’로 비유된다. 코로나19로 불거진 실물경제의 위기를 ‘블랙 스완(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이 잠자던 회색 코뿔소를 깨웠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실물경제의 위기가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전가되지 않도록 약간의 시간을 벌어준 상황이라는 의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 침체를 예상했다.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평균 –3%에 머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방역 모범국가인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 수치는 –1.2%, 외환위기 이후 첫 역성장이 예고됐다. 항공과 여행 그리고 교육 등 서비스업 생산이 역대 최대 폭으로 줄어들었고, 한계 상황에 직면한 기업과 노동자가 속출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 ‘동학개미운동’


하지만 이처럼 실물경제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도 최근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이 대폭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봉쇄조치가 시행되자 주가도 덩달아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2200이 넘었던 국내 종합주가지수는 한 달 만에 1400대까지 폭락했다. 이렇듯 코스피가 2주 만에 30% 넘게 빠지자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시장으로 몰린 것이다. 투자자 예탁금은 사상 처음 40조 원을 넘어섰다. 이 시기 외국인은 우리 주식시장에서 매물을 쏟아냈고 이들에 맞서 주식을 매수하며 장을 떠받친 주체는 개인투자자 이른바 개미였다. 한 경제 분야 유튜버가 이들을 동학개미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동학개미는 코로나19 폭락장에서 주식을 사는 개미를 일컫는 유행어가 됐다. 



대학생(인턴) 김승진씨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삼성전자 주식이 과연 망할까’ 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안전자산처럼 좀 많이 가져가고 있다. 저희 세대에게 이제 부동산 같은 건 투자 가치가 전혀 없다. 너무 비싸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생 전세대출을 갚으며 사는 인생이 일반적인데 반해 저희는 그런 꿈조차 가질 수 없는 세대이기에 주식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주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주주 수가 지난해 말 기준 64만 명대에서 3월 말 162만여 명으로 백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동학개미운동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박세인 인피니티투자자문 전무는 “최근 두 달 동안 외국인이 20조 원 어치를 매도했는데 이를 다 받아낸 건 개미들”이며 “동학개미들이 매수한 종목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수출 대기업이라든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에게 빼앗긴 대한민국 우량기업의 주식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한다.



유익선 한화자산운용 기금투자전략팀 팀장은 “개인이 주식 투자에 성공했던 사례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매수 타이밍이 좋았고 종목과 테마 자체도 나쁘지 않은 까닭에 장기투자를 통해 이런 타이밍의 효과를 잘 누린다면 성공하는 기록들로 평균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주장한다. 예전과 달리 주가가 저렴한 시점, 그리고 우량주 위주로 매수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개미들이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인들이 주식과 관련하여 좋은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 들어온 돈은 진짜 독특하다. 보통 주가가 올라갈 때 분위기에 취해 들어오는데 지금은 공포감에 사로잡힐 때 돈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공포에 대항하여 산 개인 투자자가 이길 확률이 과거보다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성공 경험 없는 개인 투자자, 이번에는 다를까


개인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던 시기는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99년 ‘바이 코리아 펀드’ 열풍을 꼽는다. 2000년대 중반의 ‘적립식 펀드’ 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이후엔 어김없이 폭락장이 찾아왔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근 개인들이 대거 주식시장에 들어오는 현상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개미들에게 과연 장기투자가 가능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 때문이다. 실제로 우량주로 시작했으나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단기매매로 돌아선 개미들이 적지 않다. 한 직장인 개인 투자자는 “처음에는 대기업주로 샀다가 기다림에 지쳐 나중에는 단타성으로 바이오 등에 투자했다”고 실토한다.



주식 전도사로 통하는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그는 좋은 주식은 사고 파는 게 아니라 노후를 위해 계속해서 구입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는 인물이다. 그는 “동학개미는 긍정적인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몇 가지 주의할 게 있다. 한 종목에만 투자해서는 안 된다. 여러 주식을 골고루 사야 되고, 올라가건 내려가건 관계없이 꾸준히 살 것”을 조언한다. 그는 이번 동학개미운동을 우리 사회의 금융문맹을 깨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봤다.


“주식투자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가장 큰 위험은 금융문맹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이것 때문에 계속해서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이 일을 해야 되는데 그런 걸 일본과 한국은 안 가르쳐주고 잘 모른다. 동학개미운동은 주식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가 예고됐다. 기업들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고 실업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로 시중에 돈을 대거 뿌렸지만 미국의 기업 부채는 이미 금융위기 당시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물경제의 위기가 금융시스템으로 전가되리라는 건 시간문제라는 의미다. 



코스피 시장은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외국인이 21조 원의 주식을 팔았고, 개인은 23조 원의 주식을 사들였다. 하지만 앞서도 살펴봤듯 지금까지 개인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사례는 없다. 개미의 성공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뒤따르지만 좀처럼 실천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낳은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 불확실성이 점차 증폭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동학개미운동은 과연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성공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정말 다를까. 


“동학개미운동이 성공하고 수익률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데 이런 성공한 경험이 있어야만 지금처럼 ‘강남부동산 불패’라는 그런 획일적인 투자 문화가 아니라 좀 더 합리적이고 선진화된 투자로 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 이미지 출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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