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소름 돋는 반전으로 찜통더위 잊게 하는 호주 소설 '외동딸'

새 날 2018. 8. 5. 13:31
반응형

'나'는 가출한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허기를 주체할 수 없었던 2014년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먹거리를 훔치려다 붙잡혀 경찰에 넘겨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바로 그 때다. 11년 전 실종된 레베카 윈터라는 내 또래의 여성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일단 절도 혐의라는 궁지로부터 탈출하고자 실종된 소녀 레베카가 되기로 작정한다. 그러니까 11년 전 실종되어 생사불명의 처지가 된 소녀 레베카 윈터가 11년만에 세상 앞에 그 놀라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한편 11년 전, 2003년 당시의 레베카는 10대 소녀라면 으레 지니고 있을 법한 그맘때 또래의 발랄함과 쾌활함 따위의 성향을 고루 갖춘 매우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레베카에게는 쌍둥이 남동생 둘이 있었으며 비록 장난꾸러기들이기는 했으나 누나와 두 동생 서로가 상대방에게 의지하며 도움을 주고 받을 정도로 사이가 돈독하고 좋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온 레베카는 함께 일하던 동료 오빠를 짝사랑하고 있었으며, 단짝 친구인 리지와는 늘 붙어다니는 사이로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일탈을 즐기곤 했다. 



소설은 11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2003년 실종 당시 레베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그녀의 시선으로, 그리고 11년이 지난 뒤인 2014년 레베카의 빈 자리를 과감히 파고든 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가짜 레베카인 그녀의 시선으로 교차하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즉, 동일한 공간적 배경 및 인물을 토대로 11년 전과 현재 시점을 번갈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성이다. 레베카를 둘러싼 사건과 주변인물들의 움직임을 11년 전의 레베카 그리고 지금의 내 시선을 통해 파헤치며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범인은 과연 누구이며, 레베카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을 유추하도록 한다.


절도죄를 지어 경찰에 입건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두려웠던 나머지 일단 이를 회피하고자 11년 전 실종된 레베카를 자처하고 나선 20대 여성 나는 스스로 연기와 임기응변에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 덕분인지 실제로 충분히 의심을 불러올 만한 상황에서조차 교묘히 빠져나가곤 한다. 경찰에 입건되는 상황만 어떡하든 회피하고 곧 도망갈 요량이었으나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레베카의 역할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미궁이 되어간다.



해당 사건의 수사를 진두 지휘했던 수사관들 역시 이를 해결하지 못 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지만, 뒤늦게라도 범죄 소명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나는 수사관의 끈질긴 신문을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피곤해서 지금 당장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등의 핑계로 둘러대면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레베카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금방 탄로 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레베카의 부모들은 나를 진짜 레베카로 여기는 듯 무척 친절하게 대해준 덕분에 그나마 레베카 역할극에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와중이었다.


새 엄마의 신용카드를 몰래 훔쳐 가출한 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바람에 경찰에 쫓기는 등 다소 철 없는 행동을 일삼아오고 도덕성마저 결여된 듯한 철부지 여성으로 묘사된 나는 철저하게 레베카를 이용하려 했으나 그녀를 둘러싼 사건에 대해 좀 더 깊이 파헤칠수록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또아리를 틀기 시작한다. 연민일까? 레베카가 누군가의 범죄 행위에 의해 혹시 이미 죽었다면 자신 때문에 억울함을 밝힐 수 없게 된다는 사실과 범인을 단죄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 못내 속상했다.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레베카 그녀가 오롯이 떠안게 된다는 사실 역시 괴로웠다.



밤마다 레베카를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알 수 없는 정체, 레베카는 당시 이를 괴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극심한 공포로 다가오게 하는 건 이러한 괴물이나 귀신 따위의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 그것도 우리가 늘 허물 없이 지내곤 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들의 예측 범주를 벗어난 끔찍한 행위가 사실상 가장 무섭다. 나는 여전히 미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11년 전 실종 사건과 얽히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쾌활하고 발랄했던 10대 소녀 레베카는 도대체 왜 실종된 것이며, 누구에 의해 이 같은 행위가 저질러진 것일까?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독자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할 만한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시켜 놓아 혼선을 유발하거나 시선을 분산시키는 등 전형적인 장르적 속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와중에 뜻하지 않은 마지막 반전은 소름을 돋게 하는 요소다. 11년 전과 현재를 두 사람의 시선으로 교차하며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못 하게 한다. 흡인력 또한 뛰어나다. 영화로 제작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조금은 서늘한 이야기인 까닭에 찜통더위를 식히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듯한 소설이다.



저자  안나 스노에크스트라

역자  서지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