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잘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새 날 2018. 3. 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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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절벽의 시대다. 사회에 진출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다수가 취업에 실패하고 있다. 취업을 원하는 이들은 취업만 되면 새로운 세상, 행복한 미래가 자신들 앞에 쭈욱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취업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전혀 딴판이다. 취업의 관문을 어렵사리 통과한 2030 청년세대의 다수가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해 2030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6.7%가 입사 후 1년 이내에 퇴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아직 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꽤나 배부른 소리로 들려올 법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왜 그토록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해놓고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걸까? 


우선 청년세대가 바라는 이상적인 조직 문화와 기업의 실재 그것과의 간극이 너무도 크게 벌어진 탓이 가장 크다. '워라밸'을 꿈꾸는 청년세대에게 있어 과거와 비교해 여전히 변함 없는 조직 문화가 달갑게 다가올 리 만무하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자니 요즘 청년들은 그래도 참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가운데 전자를 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에서 마라톤 경기 중 정상급 선수의 페이스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페이스 메이커 주만호(김명민)는 빼어난 폐활량 등 운동선수로써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으나 양 다리의 길이가 서로 다른, 결정적인 신체적 결함 탓에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이 다름 아닌 마라톤 경기에서의 페이스 메이커였다. 그는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정상급 마라토너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만을 도맡으면서 운동선수라기보다 늘 누군가의 그림자 역할을 해야만 했다. 물론 이것이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건 정작 그게 아니었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완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늘 꿈꾸고 있었다. 


한편 장대높이뛰기 종목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유지원(고아라)은 타고난 신체적 우월함 덕분에 대중들로부터 '한국의 미녀새'라는 별칭을 얻고 있었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선수다. 그녀가 잘할 수 있는 건 팬들과 SNS를 주고 받으며 소통하고 그들의 반응에 우쭐함을 느끼는 일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엔 왠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큼 좋아하는 일이 분명 있었으나 오래 전부터 이를 잊은 채 지내왔다. 이를 극적으로 끄집어낸 건 바로 주만호였다. 



사실은 스스로가 설정한 기록을 뛰어넘어서는 게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이었다. 영화 속에서 주만호와 유지원은 2012 런던올림픽 대회에 출전, 자신이 잘하는 일이 아닌,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면서 결국 놀라운 성과를 일궈낸다. 누군가의 열정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열정을 깨우기 마련이다. 주만호와 유지원의 열정에 대중들의 환호가 쏟아졌던 건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일 테다.



주만호는 아주 어릴적에 부모님을 여읜 탓에 남동생 성호(최재웅)를 건사해야 하는 등 가장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 만호는 그가 잘하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성호의 뒷바라지에 오롯이 매달렸다. 다행히 성호는 공부를 썩 잘해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만호가 기대하는 대로 훌륭히 성장,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성호에겐 만호의 뒷바라지가 오히려 부담감이었다. 왜일까? 


형이 공부를 하라고 하니 했을 뿐 정작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던 방향은 이런 게 아니었다. 어쩌면 동생이 형의 인생을 대신 살아준 셈이다. 다행인 건 그나마 성호에겐 공부가 가장 잘하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이 만호 같은 역할을 자처하고 있고, 또한 많은 자식들이 성호가 되어가고 있다. 당장 나부터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겉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이나 열등감 따위를 덮으려는 속내를 지닌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회사인간'을 원한다. 심지어 평생을 회사 조직에 몸바쳐온 이들이 회사인간으로 퇴직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의 쓰임새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나치게 획일화된 사회다. 회사인간형의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일이 좋아서 한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나마 잘하는 일이라서 한 것일까? 다수의 사람들이 후자 아닐까? 


요즘 청년세대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워라밸' '퇴사인간' '탕진잼' '욜로' 등의 신조어에 대부분 녹아들어 있다. 어쩔 수 없어서 그리고 잘하는 일이어서라기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또한 이에 몰두하려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언가 단방향만을 원하고, 마치 우리의 삶에 정답이 있기라도 한 양 획일화를 요구하는 문화가 이참에 변화를 맞이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은 지금 잘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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