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퇴사인간' 그들의 정체는 무언가

새 날 2018. 3. 1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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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 해를 관통했던 유행어 가운데 '퇴준생'이란 게 있었습니다. '취업준비생'을 취준생이라고 부르듯이 이는 ‘퇴사준비생’을 줄여 부르는 신조어입니다. 취업준비생이라고 하면 으레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납득되는 상황입니다만, 퇴사준비생이라고 하니 어딘가 모르게 생소하시다고요? 왜 아닐까 싶군요. 퇴사를 하면 하는 것이지 거창하게 무슨 준비씩이나 해가면서 퇴사를 하는 것이냐며 누군가는 분명히 볼멘소리를 내거나 심지어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퇴준생 그들 나름의 사정을 들어보신다면 이 또한 충분히 납득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요즘 청년들은 주관과 소신이 매우 뚜렷합니다. 이러한 경향성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인자 가운데 하나이기에 물론 저는 이를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자꾸만 변해 가는데 회사를 비롯한 조직은 여전히 과거에 안주, 구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몸소 경험하면서 이제는 회사에 자신들의 미래를 온전히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즉, 회사가 더 이상 개인의 삶을 책임져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워라밸'을 찾고자 언제든 회사를 떠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전 세대처럼 사직서를 가슴에 늘 품고 다니다가 여차 하면 이를 회사에 던지는 충동적인 방식의 퇴사는 절대로 아닙니다. 선배 세대의 퇴사와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퇴준생'에서 '퇴사인간'이라는 형태로 한 단계 더 진화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면 '퇴사인간'은 또 무엇이냐고요? 이는 전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헌신이 조직의 성장, 더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고를 내면화한 조직 구성원을 의미하는 용어 '회사인간'을 빗대어 표현한 반대 개념입니다. 회사 인간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까닭에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무척 강해 한 번 입사하게 되면 은퇴하는 그날까지 오로지 한 회사에만 충성하며,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절벽이라는 험난한 여건 속에서 살아가야 함에도, 아울러 무려 100통 이상의 이력서를 집어넣은 뒤에야 어렵사리 합격하게 된 회사임에도, 청년들에게는 더 이상 회사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주는 곳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요? 요즘 청년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꾀하는 '워라밸'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아울러 그러한 경향성이 크지만, 대부분의 회사 조직은 여전히 산업화 경제 성장기 당시의 조직문화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같은 개념입니다. 


ⓒ한국일보


한국일보가 보도한 한 기사에서 '월간퇴사' 기고가인 김정현 씨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즘 사람들 대부분이 머리를 많이 쓰는 일을 해요. 굉장한 몰두가 필요하니 번아웃되기 쉬워요. 근데 몸을 움직여서 일했던 제조업 시대의 근무조건을 적용시키고 있으니 어디 버티겠어요?" 즉, 시대적 조류에 걸맞게 회사 조직 또한 발빠르게 변화를 꾀해야 하나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어렵게 입사한 청년들이 퇴사인간을 자처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된 조직 문화와 꼰대들이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청년들은 회사인간이 되기를 싫어라 하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이 퇴사인간이란 용어도 어느덧 낯설지 않게 다가옵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해 2030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30세대 직장인 응답자의 66.7%가 입사 후 1년 이내에 퇴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는 오래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과 일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좀 더 괜찮으면서 근사한 여건의 회사에 몸과 마음이 끌리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조금 더 가까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구체적으로 실현 단계에까지 이르려면 넘어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습니다만, 어쨌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그 첫 단추를 끼웠다는 데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퇴사인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탓도 한 몫 거듭니다만, 그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밸을 추구하고자 하는 청년 세대의 변화 욕구 및 의지가 또 다른 양태로 발현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꼰대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운데, 그렇게 잘났다고 뛰쳐나간 사람들 가운데 잘 된 이들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들 세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퇴사인간이란 어쩌면 실패한 인간으로 분류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변화를 꿈꾸고자 과감히 나선 이들에게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를 섣불리 들이대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청년 세대의 끝없는 도전에 외려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힘겹게 살아가느니 비록 조금은 어렵고 돌아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그들의 당찬 도전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퇴사인간의 증가가 구태의연한 회사 조직 문화에도 모종의 변화를 앞당기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만든 회사와 조직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을까. (…)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우리 세대에게 퇴사는 일상이자 생활이 된 게 아닐까?  <월간퇴사 1호 편집장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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