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새 날 2016. 11. 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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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가끔씩 흩뿌리던 눈발이 오후에 접어들면서 한층 거친 형태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비가 아니라 다행입니다만, 어쨌든 궂은 날씨 탓에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아주 조금은 우려스러웠던 대목입니다. 때문에 적어도 이날만큼은 반드시 행사에 참여해야겠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의무감이 저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제5차 민중총궐기 대회' 현장인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길, 세차게 흩뿌리던 눈발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주변을 살펴 보니 청와대로의 시민 행진이 벌써부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행진 대오를 막 갖추기 시작했고,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라 아직은 활동하는 데 있어 공간적 제약은 없었습니다만, 궂은 날씨와 낮은 기온은 여전히 큰 변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거리로 거리로 일제히 쏟아져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우산, 또 다른 한 손에는 피켓 등을 든 채 자유로우면서도 밝고 경쾌한 몸놀림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메인 행사가 진행될 광화문 광장엔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고, 발 디딜 틈 없이 시민들로 빼곡히 들어찬 광장의 모습은 비로소 원래의 주인인 시민의 품에 안긴 느낌이었습니다.



청와대로의 행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 저지선이 바로 코앞이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청와대를 향해 함성을 지르거나 구호를 외치고, 혹은 노래를 부르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였습니다.



어느새 제 뒤로는 도무지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긴 줄이 놓였습니다. 시민들은 파도타기를 통해 흥을 돋웠으며, 사물놀이패의 즉흥 연주는 흡사 축제장을 방불케 할 만큼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을 직접 눈으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고, 아울러 효자로인 이 도로를 걷는 일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광화문을 지나친 적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정작 이 골목길로 접어들었던 기억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찰버스엔 이날도 시민들에 의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메인 행사가 진행될 즈음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시민들이 조금 전보다 대거 늘어났음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입니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시청을 잇는 세종로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지난 대회 때처럼 짧은 거리의 이동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동지가 가까워지니 낮의 길이가 눈에 띄게 짧아진 느낌입니다. 어느덧 해는 넘어가고 사방에서 촛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합니다.



대회 진행자가 본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출연,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열창합니다. 여느 콘서트장 못지 않을 만큼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시위 현장을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키고 있듯, 이를 진행하는 주최측 역시 수준 높은 콘텐츠로 현장에 있던 시민들의 오감을 한껏 충족시키고 있었습니다. 풍자 가득한 개사곡과 기발한 상상 및 묘사 등이 돋보였던 영상물은 이번 집회를 품격 있는 행사로 몇 차원 승격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었습니다.



시민들 저마다의 손에 들린 촛불은 어느새 거대한 파도가 되어 감동을 전하고...



가수 안치환이 등장, '자유'를 필두로, '광야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마른잎 다시 살아나' 등을 열창합니다. 그의 노래엔 힘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메시지 또한 명료했습니다. 광장은 일순간 열광의 도가니가 됩니다. 모든 이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슬픔을 표출하면서 마침내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겨울밤의 광장은 이렇듯 축제의 현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었습니다.



87년 민주화 체제가 되는 과정을 몸소 경험했던 한 사람으로서 30년 전 광장에 섰던 수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됐듯, 이번 집회 역시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눈이 내리고 비가 오는 차가운 기온의 궂은 날씨 속에서도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을 비롯, 전국 곳곳의 광장을 가득 메운 채 한 마음으로, 그리고 한 목소리로 염원했던 게 있습니다. 1분간 빛을 소등하거나 경적을 울리며 그 짧았던 찰나 우리가 간직했던 믿음과 소망은 모두가 한결 같았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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