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광기와 혼돈, 산산조각난 믿음 '71: 벨파스트의 눈물'

새 날 2016. 8. 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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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영국인 후크(잭 오코넬)는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다. 모진 훈련을 끝내고 마침내 실전에 배치되던 날, 부대 내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긴박하다. 그가 배치된 곳은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였다. 이곳에서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구교도와 영국의 잔류를 주장하는 신교도 사이에 갈등이 폭발,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었다. 이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영국군이 주둔하게 됐고, 후크 이등병은 공식적으로 이 부대에 합류하게 된다.


현장에 배치된 첫날 후크는 IRA(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주장하는 반(半)군사조직) 색출 작전에 투입된다. 이곳의 풍경은 더없이 살벌했다. 가택을 수색하는 영국의 경찰과 군인에 반감을 드러내던 북아일랜드인들이 거리로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된다. 시위대가 던진 돌 등에 의해 군인들이 맞아 부상자가 속출하고, 이에 흥분한 군중들은 더욱 거칠어져 갔다. 그 때다. 부상 당한 군인이 놓친 총을 한 소년이 탈취하여 도망을 가고, 후크와 그의 동료는 그 뒤를 쫓는다. 그 사이 충돌은 더욱 격해져, 이를 피하기 위해 영국군은 퇴각을 결정한다. 



후크와 그의 동료만이 현장에 남겨진 상황, 총기 회수를 위해 열심히 임무 수행 중이던 그들은 북아일랜드인들에 둘러싸여 집단 린치를 당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일군의 청년들에 의해 후크의 동료가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는 비극이 벌어진다. 곁에서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한 후크는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직감하고, 그곳으로부터의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는데...



북아일랜드는 섬나라인 영국 바로 왼쪽의 또 다른 섬인 아일랜드 위쪽에 위치해 있다. 벨파스트는 바로 북아일랜드의 수도다. 이곳의 시민 대부분은 신교도이며 구교도는 대략 25% 가량을 차지한다. 그동안 신교도와 구교도 간 다툼은 끊임 없이 이어져 왔다. 특히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원하는 구교도의 주민과 다수인 신교도 주민과의 대립은 지속됐으며, 1968년 이래 유혈 충돌이 빈번해지자 1969년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 주둔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3개의 구도로 그려져 있다. 우선 당시의 북아일랜드 상황이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던 구교도와 다수의 신교도 간 충돌은 이 영화 속에서도 그려지고 있다. 물론 영화는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 간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한 시선으로, 마치 제3자인 양, 1971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실제로 있었을 법한 시위 현장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 후크가 두 번째 구도다. 벨파스트의 혼란스러운 현장 속에 혼자 내쳐진 후크라는 영국 군인의 모습은 흡사 벨파스트와 비견될 만큼 혼돈의 도가니다. 그는 북아일랜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제3자로서, 철저하게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그가 겪게 되는 고초는 안타깝기 짝이 없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후크가 몸 담고 있는 군 조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후크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임이 틀림 없건만, 현실은 그가 생각하고 있고, 또한 우리가 바라는 만큼 녹록지가 못 한 상황이다. 더구나 전시라는 특수 환경에서는 모든 가중치가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기울어지기 일쑤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영화 속에서 언뜻 비치는 영국군의 북아일랜드인들을 향한 반감은 북아일랜드인들의 영국인을 향한 그것 이상으로 커 보인다.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여 가택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아일랜드인들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은 가히 위협적이라 할 만하다. 이를 목격한 북아일랜드인들의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다. 


후크 이등병은 영국군에게는 적지나 다름없는 북아일랜드 시위 현장에 홀로 남겨졌다. 주변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일견 쉽게 구조될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가 몸 담고 있는 군 조직과 관련한 사안이다. 동료가 목숨을 잃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까스로 달아나 목숨을 부지한 후크는 고위 군 간부의 스파이 행위를 목격하게 된다. 물론 이는 자신의 부대와도 관련이 있다. 



구조가 늦어지면서 후크가 겪게 되는 고초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상상 이상이다. 북아일랜드나 아일랜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데다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가 겪는 고통과 아픔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후크의 믿음은 사실상 강력한 위계질서와 명령체계에 의해 유지되는 거대한 조직 앞에서 산산조각나고 만다. 북아일랜드 사태는 후크에게는 더없이 혼란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고초와 군 조직의 행태는 그의 혼을 완전히 빼놓기에 충분하다. 후크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채 목숨이 경각해 달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생명을 구해 준 의무장교 출신 북아일랜드인의 '조직은 일개 병사를 그저 고깃덩어리로 취급한다'는 말이나 훈련 당시 '스스로의 목숨은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던 교관의 강한 어조가 새삼 귓가에서 맴도는 건 그 때문일까? 


후크의 직접적인 심리 묘사는 없었으나 그가 몸소 겪었을 고통, 아울러 북아일랜드 시위현장에서 드러나던 광기, 그리고 군 조직의 파렴치함을 바라보면서 혼돈이라는 진동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느낌이다.



감독  얀 디맨지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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