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공항은 어쩌다 청년들에게 판타지가 됐나

새 날 2016. 7. 18.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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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휴가를 갈 형편이 못 되는 2030 청년들이 공항을 찾아 여행 기분을 만끽하고, 또한 후기담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일이 유행이란다. 이른바 '공항놀이족'의 등장이다. 늘 사람들로 붐비는, 특히 여름철 성수기면 더더욱 복잡해지기 일쑤인 공항에는 여행을 앞둔 이들만이 누리며 즐길 법한 편안하고 설레는 분위기로 온통 가득하다. 그러니까 이들과 함께하는 일만으로도 왠지 여행길에 오른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이들의 후기에는 울적할 때 공항을 다녀오니 기분이 풀리고, 북적거리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출국 때만 맛볼 수 있는 설렘 따위를 공유하면서 대리만족감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심지어 힐링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데다 취업을 하지 못해 어디 가까운 곳에 다녀오려고 해도 부모님의 눈총을 받기 일쑤인 터라 좀체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는 처지인데, 공항만의 그 생생한 기운을 받고 돌아오면 한동안 그와 관련한 상념을 떨쳐낸 채 취업 준비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단다.


ⓒ머니투데이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유행이라고 하니 왠지 젊은이들만의 재기발랄함보다는 무언가 씁쓸함이 먼저 연상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겨울 혹독한 한파가 몰아칠 당시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던 젊은이들이 추위를 저렴한 비용으로 극복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SNS상에서 릴레이 인증이 유행처럼 번졌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파 극복기'다. 


가령 800원 짜리 부탄가스 한 개를 이용해 잠자는 시간 동안만 물을 끓여 보온과 가습을 동시에 해결, 단돈 400원의 비용으로 하룻밤을 날 수 있다는 노하우나 전기밥솥 껴안고 자기, 쌀이 없을 땐 쌀죽 끓여 먹으며 버티기, 로션 없을 때 식용유 바르기 등 당시 널리 입소문을 타며 알려진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디어들은 기발함을 넘어 어느덧 안쓰러움에 눈물샘마저 자극시킬 정도였다.


그러니까 겨우내 한파를 무사히 극복하고 목숨을 간신히 부지했던 청년들이 이번에는 푹푹 찌는 여름철을 맞아 주변에서 해외 등으로 떠나는 여행객들의 들뜬 모습에 잠시 흔들리며 바쁜 취업공부마저 접어둔 채 이러한 분위기로부터 탈출하고자 공항에 들러 여행길에 오른 이들의 설렌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이 후텁지근하고 지루한 여름철을 이겨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고단한 삶은 최근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저임금만 해도 그렇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실랑이 끝에 최저임금이 며칠 전 결정됐다. 지난해보다 7.7% 인상된 6470원이다. 1만 원을 기대하며 요구했던 노동계의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물론 최저임금 자체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런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못 받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라는 점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는 263만7000명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노동자 1923만2000명의 13.7%, 즉 7명 중 1명이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꼴이다. 특히 이러한 형태의 노동자가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청년층과 대학생 등에게 주로 몰려 있다는 사실은 더욱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머니투데이


이러한 결과는 장기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 상황과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 등과도 맞물려 있어 우려스러움을 더한다. 일자리가 줄다 보니 결국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청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다. 실업률은 또 어떤가. 6월 청년실업률은 10.3%를 기록하며, 두달만에 다시 두자릿수대로 복귀했다. 역대 6월 청년실업률 기준, 그러니까 17년만에 최고치다. 올 2월 12.5%로 정점을 찍은 이래 석 달간 계속돼 온 하락세에도 마침표를 찍고 말았다. 


녹록지 않은 형편에 여행길에도 오르지 못하고 그 대신 공항에 들러 공항놀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처지가 백번 이해 되고도 남는다.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각종 대책은 지금 이 시각에도 쉼없이 쏟아지고 있으나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관통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있어 공항은 일종의 심리적 해방구이자 판타지다. 비록 잠깐이지만, 자신들의 힘든 현실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청년들의 뒷모습은 그래서 더없이 초라하며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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