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부실 민간기업의 구조조정을 왜 국민 혈세로 하나

새 날 2016. 6. 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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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현재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이는 경제 전문가가 아닌 누가 보아도 명약관화하다. 수출은 갈수록 쪼그라들어 그 파이가 작아지고 있고, 내수를 이끌어가야 할 가계 역시 도통 지갑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 성장 전망은 2%대 언저리에서 횡보하다가 점차 아래로 방향을 튼 채 앞으로의 방향성을 암중 모색 중이다. 성장은 둘째치고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어 당면한 발등의 불인 셈이다. 더구나 미래의 먹거리라 할 수 있는 산업 재편이라는 큰 과제도 떠안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 경제의 눈부신 성장의 상징이기도 했던 조선 산업의 쇠퇴는 최근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는 시장 상황을 대변한다. 세계 1위의 자랑스러운 타이틀에서 어느덧 구조조정이라는 막다른 운명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산업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이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12조 원의 나랏돈을 마련하여 조선, 해운 등의 구조조정에 따르는 국책은행의 부실을 메워주기로 하고,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현재 위기에 처한 부실 민간기업은 10조3000억 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확정, 대대적인 인력 및 시설 감축을 통해 각자도생토록 한 것이다.


ⓒ한겨레


그러나 이번 구조조정계획 역시 가장 중요한 핵심인 즉, 구조조정의 빌미가 됐던 조선 해운업을 비롯한 취약 산업을 과연 어떤 식으로 재편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빠진 데다, 부실 민간기업에 대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동의를 전혀 구하지 않은 전형적인 수박 겉핥기식 기업 편애의 결과물로 여겨지는 탓에 혹독한 비난을 피해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아울러 임금 반납이나 조직 축소 그리고 임직원 전직 제한 등 오롯이 직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을 뿐, 그동안 국책은행에 낙하산 인사를 지속적으로 투입해오던 전례를 깡그리 무시한 채 정부와 정치권 출신 낙하산 인사 투입 방지 대책이나 기업의 감독 책임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민간기업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정작 관료 사회나 공공 영역에서는 이 사태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서로 책임을 회피하느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눈치임이 역력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방식의 안하무인격 대책이 가능한 걸까?



때문에 이번 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은 온통 우려 일색이다. 조선 해운 업체들을 부실 상태에서 단순히 이를 연명시키기 위한 ‘깨진 독에 물 붓기’의 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잇따른 비난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부실을 키운 책임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은 채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조차 없이 그저 가장 손쉬운 방법인 지원 규모만 늘리는, 그것도 사회적 합의조차 없이 국민 혈세를 통한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작금의 위기를 타개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게 엄연한 현실일 테니 말이다. 


ⓒ한국일보


앞으로 회생이 가능할는지의 여부조차 불투명한 산업에, 그것도 민간기업에,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은 나몰라라한 채 죄없는 직원들에게만 고통을 오롯이 떠넘기며 이를 감내시키고, 여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마저 국민의 혈세로 충당한다는 게 도대체 가당키나 한 노릇인가? 그동안 기업과 재벌에 감세와 규제 철폐 등 온갖 특혜를 부여해준 반면, 국민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해 와놓고 그것도 모자라 기업이 부실로 치닫자 이제는 그의 생명 연장을 위해 또 다시 만만한 국민과 해당 기업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 더러 희생하라고 한다. 민간기업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왜 국민이 정성껏 낸 혈세가 투입되어야 하나? 그동안 발생한 막대한 이익은 고스란히 기업이 가져가야 하는 게 맞고, 손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이기라도 한 건가? 


만에 하나 이러한 기업의 자구 노력과 천문학적인 나랏돈이 투입된 이후에도 업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면, 본격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부담은 이번 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 아니면 그 다음 정부로 넘어갈 게 뻔한 데다, 그에 따르는 뒷감당은 또 다시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쯤되면 기업과 재벌을 향한 이번 정부의 짝사랑은 지나치리만치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관료 사회와 기업에 여전히 만연한 도덕적 해이는 다름아닌 이렇듯 과도하게 기업 편애에 앞장서고 있는 정부의 행태 때문이 아닐까? 이번 구조조정이 가뜩이나 위기 상황에 처한 어려운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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