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일반 및 임대아파트를 둘러싼 갈등, 해소 방안은 없나

새 날 2016. 6. 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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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및 임대아파트를 둘러싼 갈등은 사실 어제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초등학생 사이에서 특정 아파트 브랜드명과 거지의 합성어가 유행한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일반아파트에 사는 자녀를 임대아파트에 사는 자녀들과 섞이게 하고 싶지 않다며 별도의 학급을 만들어달라는 요구 또한 차라리 애교 수준에 가깝다. 이렇듯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온갖 갈등은 어쩌면 좁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인구가 한꺼번에 부대끼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의 숙명적인 운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다른 이들과 차별화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욕망은 인간 본연의 것일지도 모르기에 이러한 갈등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적어도 인류가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로 들어선 이래 대부분의 국가로부터는 겉으로 드러나는 계급은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외견상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계층이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지만 말이다. 오늘날 계층을 구별 짓게 하는 결정적인 인자는 다름아닌 소유 재산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즉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일반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공동체 영역에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는 속내는 이렇듯 우리 사회의 경제 사회 정치적 토대 위에 인간 본연의 속성마저 덧대어지다 보니 어느덧 발현되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때문에 이 현상을 결코 바람직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정책과 제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사안에 대해, 편을 가르고 차별과 갈등을 유발하는 사람들만을 마냥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 모 방송을 통해 보도된 임대아파트 관련 내용은 앞서 든 사례의 연장선이기는 하나 일반과 임대아파트 사이를 물리적으로 막아놓은 철조망이 다소 흉측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서로 다른 계층이라는 이유만으로 양측이 소통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완전히 차단시켰기 때문이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이러한 아파트가 전국적으로 다수를 이루는 모양이다. 상대방이 얼마나 싫었으면 마치 휴전선 사이를 그어놓은 것마냥 철조망으로 막아놓았을까 싶다. 심정적으로 두 계층이 섞이고 어울리는 게 너무도 싫은 나머지 이를 물리적인 공간으로까지 옮겨놓은 채 매우 극단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되면 계층 간의 관계가 단순한 위화감과 갈등을 넘어 증오와 혐오로까지 번지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우려스럽다. 언론보도 역시 이러한 현상을 '분단 비극'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용어를 써가며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 경제적 토대 위에서 임대아파트 단지를 별도로 만든다는 건 다분히 모험적이다. 즉 보지 않고도 그 결과가 뻔히 예측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눈에 보이지 않던 계급을 구체적으로 밖으로 끄집어내어 선을 그어놓은 결과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는 정부나 지자체 역시 그동안 이 현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것으로 안다. 이의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소셜믹스' 정책이다. 


'소셜믹스'란 일반과 임대를 동일한 단지 내에 같이 넣어 사회 경제적 배경이 각기 다른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도록 배려한, 새로운 주거 형태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또한 문제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라고 하더라도 아파트 동별로 일반과 임대를 분리 배치하는 바람에 오히려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 단지가 따로 만들어지는 경우보다 더욱 극심한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가 잦은 탓이다. 


물론 같은 단지 안에 일반과 임대를 혼합 배치하여 저소득층에 대한 차별적인 요소를 없애고 사회적 통합을 꾀한다는 취지 자체는 매우 높이 살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별개의 임대아파트 단지에 비해 물리적인 거리만 다소 좁혀졌을 뿐, 정작 관리 운영 문제로 몸살을 앓으며 갈등을 호소하는 단지가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라 간극은 여전하다. 현행 규정상 일반아파트는 주택법, 임대아파트는 임대주택법에 따라 각기 관리해야 한다. 이는 주민 대표기구나 관리비 부과 방식 등이 모두 다르다는 의미인 만큼 태생적으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일반과 임대아파트 사이의 갈등은 이를 해소하려는 지자체와 여러 기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역주행 중이다. 분단 비극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됐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소셜믹스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봐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아직 한 가지 실험이 더 남아있다. 그러니까 소셜믹스의 궁극적인 목적이 경제적 격차로 인한 갈등 요소를 없애 사회적 통합을 꾀하는 것이기에, 한 건물에 일반과 임대 주택을 통째로 섞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아직 남아있다. 다만, 일반과 임대 주택을 서로 혼합할 때에는 층을 위 아래로 구분한다거나 비율을 비대칭적으로 맞춰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같은 건물 내에서도 빈부 격차에 의한 갈등이 발생, 점차 손 쓸 수 없을 만큼 확산일로로 접어들고 마는 영화 '하이-라이즈'에서처럼 벌써부터 그 결말이 충분히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정책이 본격 시행되기 이전에 먼저 다듬어야 할 것들이 조금 있다. 같은 건물에 일반과 임대를 혼합 배치하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는 이원화되어 있는 주택 관리와 관련하여 이에 공통으로 적용될 공동주택관리에 관한 기본 틀이 사전에 마련되어야 할 테고,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계층 간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관리 규정 따위가 요구된다. 아무쪼록 이러한 실험이 제대로 성공을 거두어 끔찍한 철조망 형태의 물리적인 분단 현상을 넘어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깊숙이 그어져있을지도 모를 차별과 갈등 요소들을 치유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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