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위안부 할머니 일본 지진 성금, 왜 논란이 돼야 하나

새 날 2016. 4. 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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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구마모토현 등을 휩쓴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성금을 기부한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신들께서 직접 당했을 고초와 피해 그리고 그의 해결을 잠시 뒤로 미룬 채 가해국인 일본에 온정을 베푼 건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사안이자 모두의 귀감이 될 법한 행위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이를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오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번 성금 기탁에 대해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 형국입니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이 기부금을 전달하면서 일본에 자존심 굽히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영 마뜩잖다거나 도움을 받은 일본이 고마워할지조차 의문이라는 내용부터, 심지어 할머니들을 매춘부 취급하는 작자들이 다름아닌 일본인들인데 이런 사람들을 돕자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현까지, 매우 다양한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은 할머니를 짓밟은 선조의 후손들에게 고통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라거나 강간범 내지 살인범이 상을 당했다고 하여 부조하러 가는 건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다소 섬찟한 반응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민족 전체에게, 특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는 더더욱, 절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흔과 고통을 안긴 저들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끔찍했던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기색조차 않는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고, 심지어 툭하면 독도 도발마저 감행해오는 일본일진대, 누구에겐들 달갑게 다가올 리가 만무합니다. 아울러 위안부 협상에서 보여준 일본의 고압적인 태도와 그와는 정반대로 저자세로 일관한 우리 정부의 극과 극의 상반된 모습은 두고두고 속을 쓰리게 합니다. 우익세력이 때때로 일본 내에서 펼쳐보이곤 하는 혐한 시위는 역겨울 정도입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어디 한 군데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서의 인간은 모두가 한결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든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리라고 하여, 아울러 일본이라고 하여,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본인들이 현재 겪고 있을 고통을 에콰도르인들 또한 동시에 겪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포함한 지구촌에 정착한 인류 모두는 작금의 현실로부터 절대로 예외일 수 없는 법입니다. 일본의 행동이 밉다고 하여 일본인들에 대한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마저 외면하거나 지원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행위는 옹졸함의 극치입니다. 아울러 지진 복구에 쓰라며 성금을 기부하는 건 절대로 일본에 우리의 자존심을 굽히는 행위로 볼 수 없습니다. 

 

 

잇단 강진으로 신음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건 오로지 인간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공감능력 덕분입니다. 곤란에 처한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우리 모두가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과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류애적 관점으로 다가가야 할 사안을 동일한 시각, 같은 눈높이로 바라 봐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고 슬픔과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선의를 베푸는 당사자는 그로 인한 혜택을 입게 될 이들로부터 모종의 대가를 기대하며 행위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고마워할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인지가 우리의 지진 성금 기부 행위에 대한 판단의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에 재일교포들도 많고 우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줬던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모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

 

일본에 지진 성금을 기부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20일 수요집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정작 극심한 피해를 당한 일본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이토록 의연하건만, 외려 상대적으로 관련이 적은 우리가 할머니의 선의에 대해 무어라 어쭙잖은 반응을 내비치고 있는 건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상황과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강간범이나 살인범의 경우 상을 당해도 그들에게 부조하러 가지 않는 게 보편적인 정서라며 앞서 누군가가 언급한 바 있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일본에 성금을 기부하는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행위는 절대로 쉬운 판단과 간단한 결정의 산물이 아님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할머니들의 일본을 향한 관용 및 선의라는 어려운 결정에 대해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오히려 따뜻한 박수를 보내드려야 함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선의는 또 다른 선의를 낳으며 이 세상을 더욱 밝게 만드는 단초가 되게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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