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보육 대란 위기, 정부가 결자해지하라

새 날 2016. 1. 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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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자칫 보육 대란으로 치닫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우려 때문에 전국의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아이만 낳으면 국가가 모두 책임지겠다며 호기롭게 떠들던 주장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건지 중앙정부와 교육청 등 보육 주체들은 서로 내탓 네탓 공방만을 일삼고 있다. 애초 박근혜 대통령은 아이 보육은 국가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낳기만 하라며, 보육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에 대해선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노라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 만 3세에서 5세까지 무상보육이 전면 확대된 이후 공약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때문에 이번 논란의 책임은 사실상 정부에 있다. 정부는 재정이 열악하다며 누리과정 예산을 연거푸 교육청에 떠넘겨 왔다. 이로 인해 17개 교육청의 채무 총액이 20조원을 웃돌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등 지방 재정은 현재 말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여기에 한 술 더 뜬 정부는 지난해 10월 지방 교육청과 제대로 된 소통이나 논의조차 없이 누리과정 예산은 교육감의 의무라며 이를 아예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못을 박는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과 동시에 이의 시행에 들어갔다. 대화를 하자는 교육감들의 요청도 정부의 귀에는 전혀 들려 오지 않는 모양이다. 소통 없는 일방통행식 정책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정부는 외려 재의요구 요청, 대법원 제소, 교부금 차감 등 법적 행정적 재정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대처하겠노라는 엄포만을 늘어놓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아랑곳없이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정부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한 교육청은 단 한 곳도 없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중 한쪽이라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학부모들에게 보육료를 받아야 하는 등 보육 대란이 임박한 서울, 경기, 광주, 전남, 강원, 세종, 전북 등 7개 교육청을 제외한 나머지 10개 교육청 역시 예산이 온전하게 확보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중앙 정부의 예산이든 지방 정부의 예산이든 어차피 자신들이 낸 세금이기에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건만, 이들의 책임 전가로 인해 고스란히 보육 대란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위기와 맞닥뜨리게 됐다.

 

물론 애초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대로 국가가 누리과정 예산을 전적으로 책임졌으면 이렇듯 험악한 꼴이 연출됐을 리가 만무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른바 인구절벽 상황이 눈 앞에서 어른거린다.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할 전망이다. 2016년 3704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여 2050년이면 2535만명이 된다.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현재의 출산율을 근거로 산정해볼 때 전체 인구가 2750년이면 0명이 된다는 사실이다. 자칫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아예 종적을 감출 가능성마저 점쳐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국면이다. 



정부 역시 이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바는 아닌 것 같다. 지난달 제3차 저출산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는 고용과 주거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전세자금 대출, 임대주택 강화, 출산 의료비 부담 완화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작금의 보육 대란 위기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죄다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싶다. 한쪽에서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보육은 국가에서 모두 책임지겠노라며 주장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나몰라라 책임 전가만을 일삼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겠다며 젊은 세대의 등을 마구잡이로 떠밀고 있는, 이런 앞뒤 맞지 않는 정책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가뜩이나 희망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건조하고 팍팍한 세상, 다음 세대인 아이에게만큼은 당대와 비슷한 척박한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대통령의 사탕발림과도 같은 약속만을 믿고 덜컥 아이를 낳았더니 언제 그러한 약속을 했느냐며 발뼘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가. 이러한 처지에서 제아무리 그럴 듯한 모양새로 포장돼 있는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어디 마음 놓고 애를 낳을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러면서도 저출산을 막아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정부다.

 

미국 의회 도서관 산하 의회 조사국이 발간한 연례 무기판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에 78억 달러(9조1299억원) 규모의 무기 구매계약을 체결,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무려 70억 달러 어치가 미국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무기 수입을 많이 한 우리나라는 그동안 수입한 무기에 대한 품질검증을 대부분 해외 업체에 의존해 왔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언론발로 전해졌다.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의 실패는 이의 연장선으로 보이며,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던 국산 전투기 FA50과 T-50을 해외 에어쇼에 참가시키거나 수출할 때조차 핵심 기술의 유출 우려로 미국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 연출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선진국 앞에서는 호갱 역할을, 국민 앞에선 무책임과 무능함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정부다.

 

ⓒ중앙일보

 

정부는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보육 예산을 지원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 제시나 소통조차 없이 그저 지방 정부를 향해 윽박지르고만 있다. 저출산이 국가 존재를 위협하는 중차대한 사안임을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아울러 자신들이 스스로 내걸었던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보육대란 위기 사태를 나몰라라 내팽개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사람을 죽이는 살상 무기만큼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수입하여, 무려 10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다. 

 

아기와 무기, 이 얼마나 그로데스크하며 극적으로 대비되는 이미지인가. 물론 북한과 맞대면하고 있는 우리만의 특수한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비단 국방 예산만을 언급하려는 게 아닌, 선심성 예산 편성에는 아낌없이 퍼붓는 등 보육 예산 편성에 대한 여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을 오늘날과 같은 위기 상황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건 결국 의지와 관련한 사안임을 지적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의 무책임과 몰염치를 탓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학부모들을 불안에 떨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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