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은밀한 유혹> 긴장감 늦출 수 없었던 범죄 멜로

새 날 2015. 6. 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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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여자'라는 프랑스 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관람 내내 짜임새있게 와닿았던 연유는 이 때문인 듯싶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초반부터 끝마칠 때까지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굳이 비슷한 류의 영화를 떠올리자면, 지난해 개봉한 '나를 찾아줘'나 아주 예전 영화 '적과의 동침' 따위가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제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 해도 중간 중간 지루하거나 졸릴 만한 요소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전혀 기대를 하지 않은 데다, 이 영화와 관련한 사전 정보에 대해, 심지어 장르조차, 전혀 모른 채 관람한 결과일런지도 모른다.

 

마카오에서 친구와 함께 여행사를 차린 유지연(임수정), 그녀는 동업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빚마저 잔뜩 떠안은 채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빚을 갚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그녀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마카오 최고 부자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젊은 미혼 여성을 간병인으로 구하고 있는데, 귀가 쏠깃할 만큼의 급여를 제공해 주겠단다. 

 

할아버지가 미혼 여성을 찾는 꼴이 영 미덥지 않은 그녀였으나 당장 돈을 갚으라며 쫓아다니는 징글징글한 사채업자들을 볼 때면 그녀에게 놓인 선택지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결국 면접을 보기로 하고 면접장소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엔 한 눈에 봐도 그럴싸하게 잘 빠진 멋진 청년 성열(유연석)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영화

 

앞서 언급한 부자 할아버지라는 회장(이경영)의 비서이자 의붓아들이었다.  그는 유지연의 절박한 상황을 역이용해 파격적인 제안을 해온다.  즉 자신이 의붓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회장의 상속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유지연이 회장의 간병인으로 간택되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에 이르게 될 경우 회장의 전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한 뒤 자기와 절반씩 나누어 갖자라는 제안이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강하게 거부하는 듯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는 순간, 아울러 허우대 멀쩡한 성열에게 향하고 있는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연정 때문에 고민은 잠시잠깐동안만 머물다 이내 사라지고 만다.  결국 성열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녀, 회장의 간병인 역할을 맡게 되는데..

 

회장은 돈만 밝히는 상당히 까탈스러우면서도 괴팍한 영감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 행동을 놓고 봐도 그러한 평가가 결코 과한 것만은 아닐 듯싶다.  어디론가를 향해 항해 중이던 초호화 보트는 사실상 회장만의 왕국이나 다름없다.  배 위에서의 그의 명령은 곧 법으로 작용하니 말이다.  모든 여자들을 자신에게서 돈만 뜯어가려는 벌레쯤으로 여겨오던 회장에게 있어 유지연이라는 여자라고 하여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회장이 이러한 성격을 갖게 된 데엔 아픈 과거가 있고, 그동안 축적된 학습효과 덕분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했다.  그가 의붓아들인 성열에게 유산 상속을 하지 않은 채 전부 사회에 환원하려는 이유 역시 그로부터 비롯됐음직하다.  성열의 시각에서 볼 때 회장은 자신의 엄마를 버리고 병들어 죽게 만든 원흉이자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반대로 회장은 성열의 객관적인 사람 됨됨이를 진작부터 간파해 오던 터다. 

 

유지연이란 인물은 무척 다중적이라 뭐라고 꼬집어 표현하기가 어렵다.  회장 앞에 고스란히 드러난 그녀의 민낯은 상당히 자존심 강하고 올곧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래서 회장 역시 어느덧 그녀에게 빠져들게 됐지만, 성열 앞에선 그녀의 전혀 다른 면모가 드러나고 말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탓일까?  평소에도 사람을 쉽게 믿었던 그녀였던 터라 툭하면 배신 당하고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 유지연, 무언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성열에게 매혹당한 채 그와의 미래상을 남몰래 그려가며 그가 모의한 범죄 행각에 일조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으로 자립할 자신이 없는 여성이, 마치 신데렐라처럼 자신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켜 줄 멋진 왕자가 나타나기만을 학수 고대하는 모습이 흡사 신데렐라를 연상케 하는 탓에 영화 속 유지연이란 여성은 줄곧 신데렐라로 견주어지곤 한다.  이 영화,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에 대한 믿음에 관해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성열에게 자신을 향한 마음이 정말로 없었는가를 확인하며 씁쓸하게 미소짓는 유지연의 마지막 대사 한 꼭지엔 인간을 향한 회의가 짙게 배어 있는 탓이다.  

 

단언컨대 진정한 신데렐라는 없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만 존재할 뿐..

 

 

감독  윤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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