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예비군 훈련장 총기사고, 예고된 인재인 까닭

새 날 2015. 5. 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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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가해자 포함 3명이 목숨을 잃고 2명이 부상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의 아직 꽃을 채 피우지도 못한 청춘들이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가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에 대해선 그가 남긴 유서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궤적을 통해 반추해볼 수밖에 없게 됐다. 일종의 심리적 부검을 통해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물론 이미 전문가들이 언급하고 있듯 군생활 당시 B급 관심병사로 분류돼 특별 관리를 받았던 과거의 흔적이나 유서만으로도 그가 안고 있던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퍼부은, 정황상 묻지마 분노 범죄일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무한경쟁 속에서 극단으로 내몰린 채 어느덧 부적응자로 전락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를 향한 분노가 잔혹한 범죄 형태로 표출되는 사례가 근래 늘고 있다. 물론 이는 심리적, 유전적, 그리고 행동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각 요소의 중요도에 따라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어쨌거나 개인의 잠재돼 있던 분노를 일시에 폭발시키는 현상을 사전에 막을 재간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함이 맞겠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예비군 총기사고 역시 어떤 정신병력을 지닌 한 사람에 의한 단순 우발적 사고로 치부할 수도 있는 문제다. 통제 불가능한 분노 속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자꾸만 몰아가고 있는 치명적인 사회 구조가 단시일 내에 바뀔 사안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예비군 훈련을 총괄하고 있는 국방부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인의 충동범죄를 막을 방법은 없지만 그에 대한 사전 대비를 소홀히 한 건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엄중한 사안인 탓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폭력사범 36만 6,527명 가운데 15만 2,249명이 우발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범죄자 10명 중 4명이 홧김에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채 범죄를 일으킨, 일종의 분노 범죄에 해당한다. 충동조절장애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역시 늘고 있단다. 2009년 3,720명이던 충동조절장애 환자 수가 2013년 4,934명으로 32.6% 증가한 것이다.

 

ⓒ뉴시스

 

이러한 통계는 무얼 의미하는가. 인명살상용 도구인 총기를 다루는 교육 훈련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이미 사회적 병리현상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민간인 신분인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신 교육이나 안전 교육조차 없이 마냥 느슨한 상태에서 총기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도록 방치한 꼴이 돼버렸다. 

 

아주 오래된 얘기이지만, 군 복무 당시 내가 가장 싫어했던 훈련이 다름아닌 사격이었다.  왜냐하면 단 몇 발을 쏘기 위한 훈련 과정이 너무도 고달팠던 탓이다.  총기라는 흉측한 무기를 다루는 일이기에 고도의 정신력을 집중시키기 위한 고달픈 사전 훈련은 필요악이었던 셈이다. 특히 한겨울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그 차가운 총기를 든 채 맨바닥에서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할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유격훈련도 마찬가지 개념으로 봐야 한다.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신체의 근육을 모두 풀어주고 정신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PT체조를 줄창 시켰던 셈이다. 군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그 공포의 PT체조에 대해선 아마도 모두들 할 말이 많을 줄 안다. 사격을 할 때면 이렇듯 현역병들에게조차 정신훈련과 체력훈련을 병행한 채 고도의 집중력을 높이고 안전에 유의하고 있건만, 하물며 예비군은 이미 민간인일진대 오죽해야 할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 당국은 이들을 너무 쉽게 방치하고 말았다.

 

이미 숨진 가해자가 군 시절 관심병사였다는 기록이 이번 예비군 훈련 시엔 무용지물이었다는 대목은 두고두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앞서 언급한 통계를 통해서나 사회 분위기로 보건대, 군에서의 기록은 더 없이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을 테며, 사전에 이에 대한 기록이 남겨졌더라면 해당하는 이들에겐 총기 지급을 하지 않는 등 충분하진 않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사고 예방 만큼은 일정 부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국방부가 참으로 어이없게 다가오는 건 예비군들을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하면서 정작 병력을 언급할 땐 이들을 모두 포함하여 정예병력 몇십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며 떠벌리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형식적이며 느슨하기만 한 이러한 훈련이 과연 유사 시 현역의 대체 병력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혹자는 영점조준사격 시 탄창에 세 발의 총탄을 넣었어야 하는데 편의상 열 발 모두를 넣어 이러한 불상사를 빚었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또한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일 테다.  최근 예비군 훈련장에 다녀온 이들에 의하면 영점조준사격을 제대로 하는 훈련장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훈련장도 태반인 것으로 전해진다. 즉 그냥 총을 쏘았다는 흔적만 표적에 남기면 모두에게 OK가 되는, 지극히 형식적인 훈련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관련 규정이 따로 없는 탓에 훈련장마다 운영이 제각각인 이유도 한 몫 한다.

 

허술한 총기 관리는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테다. 우선 과거 칼빈이나 M1 따위의 오래된 총기를 사용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현재 현역병의 주 무기랄 수 있는 K2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알다시피 K2의 성능은 가공할 만하다. 예비군 훈련을 마친 지가 너무 오래된 탓에 최근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최근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총기를 전방만 향하도록 고정시켜 놓은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 관리가 제멋대로란다. 이 또한 관련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이다. 현역병도 아닌, 민간인 신분인 이들이 사격을 함에 있어 20사로에 고작 6명의 관리요원이 투입된 현실도 안전불감증의 전형으로 꼽힌다.

 

충동조절장애로 인한 묻지마식 분노 범죄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인 탓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안은 채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본 통계에서도 드러나고 있듯 이러한 류의 환자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예비군 훈련장에서의 사고는 그동안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지만, 이렇듯 묻지마식 유형의 사고는 처음이다. 사회의 변화에 걸맞는 새로운 유형이 등장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사고가 터진 후 미흡한 점들을 고쳐나가야 할 상황이다. 국가가 충동 범죄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예방책 마련은 충분하진 않더라도 일정 부분 가능하다. 이를 강제로라도 억지할 수 있는 장치는 훈련을 도맡은 당사자, 즉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 때문에 이번 사고 역시 안전불감증이 낳은 예고된 인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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