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막말에 멍드는 우리 사회

새 날 2015. 4. 2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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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20일 장애인 집회 현장에서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기동대를 향해 "여러분도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장애인을 비하한 발언입니다.  그에 앞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가 열린 16일 밤에도 물대포를 살포하는 경찰들에게 "우리 경찰 잘하고 있습니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거나 캡사이신을 쏠 때도 당당히 쏘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례2, 서울 금천구 모 초등학교 교사는 제자들에게 수시로 욕설을 내뱉고 학부모들에게 거친 행동을 일삼아 온 탓에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습니다.  한국일보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친구와 다투다 우는 아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교사는 '등신XX'라는 욕설을 여러 차례 내뱉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연필을 떨어뜨리는 등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불 같이 화를 내곤 했다고도 합니다.

 

사례3, 경남 김해지역 인터넷 설치기사들은 밀린 임금을 받아달라는 진정이 반 년 넘도록 처리되지 않자 작정하고 근로감독관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만난 근로감독관이란 사람은 그들 앞에서 "근로자는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다" 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모욕감을 느낀 기사들은 사건 발생 사흘 뒤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줄 것을 고용청에 요구했으나 KBS 취재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그대로 넘어갔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마이뉴스

 

위 세 가지 사례 모두는 공교롭게도 같은 날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건들입니다.  그야말로 막말 퍼레이드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해당 사건들로부터는 묘한 공통점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라 일컬어지는 경찰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정작 보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낮춰 표현하는 일에 몰두해 왔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책무 완수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무심결에 나온 발언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직책과는 결코 어울림직하지 않은 언행임엔 틀림없습니다.  그가 평소 어떠한 생각들을 해 왔는지 어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어머니와 같은 인자함과 때로는 아버지와 같은 엄격함을 고루 갖추고, 아이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쏟으며 이들의 재능을 신장시켜야 할 교사는,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에게 몹쓸 욕설을 내뱉거나 거친 행동을 일삼기 일쑤였습니다.  교사의 행동 하나 하나는 어린 새싹들의 성장과 인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표본입니다.  알려진 내용이 사실일 경우 교사라는 직업인으로서 무척이나 부적절한 행동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근로감독관이라는 직업은 사업주의 위법한 행위를 감시하고, 그 누구보다 근로자를 보호해야 하며 그들의 권익을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건만, 이와 반대의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야 근로자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 줄 수 있을지나 모르겠군요.  가뜩이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억울해 하는 사람들에게 노예나 다름없노라는 막말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가능한 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막말 세례를 받은 장애인이나 초등학생 그리고 노동자 모두는 사회로부터 보호 받아 마땅한 사회적 약자에 속합니다.  아울러 막말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직업적 책무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막말은 다른 그 어떤 상황보다 아픈 부위를 재차 후벼파며 헤집고 들어오는 느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빚어지는 걸까요?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여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때문에 일종의 직무 유기인 셈입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빠른 시간 내 민주화를 일궈낸 우리 사회이지만 여전히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고, 권위주의적인 색채마저 채 가시지 않은 흔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지난 21일 박용성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또 다른 막말 파문으로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 그리고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보직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박용성 전 이사장의 사례나 대한항공 땅콩회항 논란을 일으켰던 조현아 전 부사장의 사례처럼 일반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에 놓여있는 이들이 그들보다 낮은 직급의 사람을 향해 갑질을 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서의 사례들 역시 표면상 이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행태로 보건대 본질적으로는 이의 연장선쯤으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여전히 타인을 향한,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인정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입니다.

 

이번 막말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들 모두는 결국 각기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직위 해제 등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게 됐으며, 일부는 인권 단체 등으로부터 형사 고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조치만으로 끝낼 사안은 분명 아닙니다.  잇따르고 있는 막말 현상이 가뜩이나 아픈 우리 사회를 더욱 멍들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말은 이로부터 당한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도 불쾌하게 만드는 특별한 효험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위치한 이들의 갑질 논란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불거지고 있는 막말 파문은 결국 우리 모두로 하여금 스스로 맡은 바 직분에 충실히 하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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