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시대를 역주행하는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

새 날 2015. 2. 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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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태극기의 게양률을 높이기 위해 관련 법 개정에 착수함은 물론이거니와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태극기 달기 운동도 함께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70주년인 올해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고, 분단 극복의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엔 이미 '전 국민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 추진단'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진 상태라고 한다.

 

물론 다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해인 만큼 일정 정도의 분위기 조성 및 확산 운동은 불가피해 보인다.  잔칫집에선 흥겨움으로 분위기를 한껏 북돋워야 하듯, 범 국가적인 기념일 역시 그에 걸맞는 분위기 조성은 반드시 필요할 테니 말이다.  다만, 그 추진 방안과 방식이 문제라면 문제다.


태극기 게양률을 높이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건 이번 운동을 일회성으로 끝내려는 게 아닌, 결국 광복 70주년 기념을 빌미로 과거 유신정권 당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던 국기 게양 및 하강과 관련한 살풍경 따위를 영구적으로 재현하겠노라는 의도로 비치는 데다 애국을 빌미로 국가주의 색채를 더욱 드러내는 모양새로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999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사라졌던 민간 건물과 아파트 등에 별도의 태극기 게양대를 또 다시 만들도록 한다거나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기 게양 관련 일기 내지 소감문 발표, 국기 게양 인증샷 제출, 어린이집과 경로당을 통한 애국심 고취, 그리고 국기 게양 및 하강식 실시 등이 담긴 방안으로부터는 흡사 7,80년대의 시대상을 떠오르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경향신문

 

그렇다면 과거를 직접 겪어보지 못했던 이들에겐 당시 상황이 어떤 식으로 비치고 있을까?  그와 관련한 글 하나를 참고해보자.  유신정권 시절 국기 하강식 및 극장에서의 애국가 상영과 관련한 당시 풍경과 분위기가 궁금한 이들에겐 민병욱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이 작성한 "전 국민 차렷! 경례!"라는 글에 관련 사항이 잘 묘사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하는 바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정부의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관람한 영화 '국제시장' 속에서 등장했던 국기하강식 장면을 보고 애국심을 강조한 즈음부터 시작된 것이란다.  과거 선친의 통치 행위로부터 보고 학습한 내용과 이를 통해 체화된 평소의 지론이 결국 복고 지향형 영화 속에서 등장한 영화적 상상을 만나 비로소 현실화되는, 나름의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 아닌가.  놀라운 일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진정한 '창조' 아니겠는가.

 

유신정권 이래 전두환 정권까지 지속됐던 국기를 통한 애국심 고취 문화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군사정권이 낳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병영문화와 획일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국기 게양 및 하강식은 1989년부터 사라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무려 25년 이상이 훌쩍 지나고 더구나 세기마저 바뀐 지금에 와서 다시금 과거 군사정권 당시와 비슷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애국심이란 건 억지로 고취시킨다고 하여 만들어지는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를 강제하겠다고 나선 건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시 하겠노라는 국가주의에 다름아니다.  이는 결국 국가 권력을 앞세워 사회 전체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며 국민의 기본권마저 침탈하겠다는 의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유신정권 시절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던 학생 등이 구속되는 건 빈번했던 일이기도 하다.

 

'애국'을 앞세운 세력이나 국가가 어떠한 모습을 띠어가는지는 이웃국가 일본과 스스로 애국보수 세력임을 자처하는 커뮤니티 '일베' 따위를 보면 답이 나온다.  때문에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번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은 시대를 제대로 역주행하고 있는, 비정상적이면서도 지극히 몰상식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근래 우리 사회엔 '토토가', '쎄시봉', '국제시장' 등의 복고 열풍으로 뜨겁다.  이렇듯 과거를 그리워 하며 이를 소비한다는 건 현재의 삶이 너무도 팍팍하기에 그에 따른 고단함을 씻어내려는 방편 중 하나일 테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정책처럼 과거 그 시절로 되돌아가길 바란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아울러 이러한 생각을 그저 머릿속에서만 간직하는 게 아닌 실제로 현실화시키려는 국가 권력의 움직임은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과연 그 끝은 어디쯤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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