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공권력이 존재해야 할 또 다른 이유

새 날 2014. 11. 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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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인터넷을 통한 개인 간 중고 물품 거래가 무척 활발한 모양이다.  인터넷이 가져다 준 편리함이 해당 형태의 거래 활성화에도 일조하면서 각종 커뮤니티와 카페 등을 통한 직거래가 크게 흥하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알뜰한 소비에 눈을 뜬 개인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기에 반갑게 다가온다. 

 

그런데 늘어나는 물품거래 수만큼 각종 사기 사건이 들끓고 있는 모양새다.  개인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작정한 채 속이려드는 전문 사기업자들을 물리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다.  문제는 상습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전문업자들이 득시글거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피해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거의 방임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머니투데이

 

최근 20대 초반의 커플 사기꾼들의 행각이 도마에 올랐다.  그들은 모 카페를 통해 노트북 등의 판매글을 올린 뒤 돈만 입금받아 가로 챈 혐의로 지난해 검거된 바 있다.  그러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잠적하였고 현재 지명수배된 상태다.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수천만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여 오고 있어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80여명에 이른다.  (20대 커플은 2년째 사기 중..속수무책 사이버 물품사기 기사 참조)

 

피의자가 매번 장소를 옮겨다니며 계좌를 새로 개설한 채 사기행각을 벌여 온 탓에 피해자들의 신고가 여러 경찰서로 분산된 데다, 큰 금액이 아니었기에 각 관할 경찰서에선 해당 사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음에 틀림없다.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적은 인력으로 이런 조그마한 사건까지 일일이 대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이 엿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설사 사건을 해결한다 해도 경찰 스스로 영향력이 크지 않은 사건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큰 탓에 자신들의 치적 내지 공을 쌓는 데 별 다른 도움이 안 될 것이라 판단했을 테고, 덕분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음직한 행태를 그들의 언행을 통해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 경찰서 관계자의 항변을 통해 이런 상황이 어떤 식으로 비치고 있으며, 또 어떻게 그에 대응하고 있는지 속내를 한 번 확인해 보자. 

 

경제팀엔 매일 고발사건이 수북이 쌓여 수배 내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맘먹고 도망 다녀 안 잡히는 걸 뭐라 할 순 없다.  신중하지 못하게 거래한 개인 잘못도 있다.

 

물론 해당 발언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하루에 일어나는 사기 사건만 해도 언급된 것처럼 수백 건 이상일 텐데, 해당 건들을 일일이 대응하기란 인력이나 시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역부족이기 때문일 테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 먹고 도망 다니는 피의자를 무슨 수로 일일이 쫓아다닐 수가 있겠는가.  신중치 못한 개인의 잘못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언급된 내용이 혹여 모두 사실이고, 일선 경찰들의 근무 여건이 아무리 어렵다손 쳐도 경찰이 안일하게 대응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경찰 내부 시스템엔 분산된 신고들을 한꺼번에 모아 공유하고 관리하는 네트워크가 분명 존재할 텐데, 만약 이마저도 없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해당 사건들에 대해 관할 경찰서마다 별건으로 관리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공권력의 분산 효과 덕분에 피의자가 수배된 상태에서도 사기행각은 얼마든 가능했을 테다.  별건으로 신고된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한 피의자로부터 양산된 피해 건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해당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모래알처럼 흐트러진 공권력이 사기업자들에게 우스워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듯싶다.

 

우린 사람이기에 실수도 곧잘 한다.  아무리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해도 마음 먹고 사기치려는 작자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경찰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들의 신중치 못한 태도를 언급했더라면 충분한 설득 요건이 됐을 테지만, 이번 건만큼은 분명 그렇지 않아 보인다.  아니 되레 적반하장인 상황으로 읽힌다.

 

공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피해자와 피해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피의자는 경찰과 개인들을 농락하듯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다.  현재도 수많은 사기꾼들이 온라인 상에서 사기행각을 벌여 오고 있으며 새로운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사기업자의 수와 공권력의 능력은 정확히 반비례한 상황이다.

 

공권력의 역할은 시민들을 윽박지르며 책임을 전가시키는 일에 힘을 쏟기보다 시민들이 안전하며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 불리는 이유 역시 그로부터 비롯됐을 테다.  필요할 때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어 시민들의 삶을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데에 공권력이 존재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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